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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번역가 Mar 26. 2024

미국 여행 시 비자 사기 안 당하는 법

ESTA 신청 대행 사기 예방 및 대처법


베트남을 여행한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 가던 중이지만, 오늘은 미국 이야기를 좀 하겠다. 왜냐하면 내가 2023년을 괌 여행으로 마무리하려다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신청 수수료는 21달러인데 115달러가 출금되었다.



상황은 이렇다. 친한 친구들과 연말 괌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 전 한 친구가 미국에 가려면 미리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구글에서 찾은 ESTA 신청 페이지 링크를 단체 대화방에 공유했다. 다들 아무 의심 없이 이 링크의 랜딩 페이지에서 미국 비자 면제를 신청했다. 사이트 URL도 attractions-of-usa 닷컴이니 마치 미국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실 이 사이트는 미국 정부의 공식 사이트가 아니고 신청 대행 명목으로 터무니없이 비싼 수수료를 받는 사설 업체의 사이트였다. ESTA 공식 신청 수수료는 21달러인데 이 업체는 우리에게 115달러씩을 받았다. 몇 주 뒤에 다른 친구가 출금 내역을 보고 수수료 금액이 너무 큰 것을 눈치챘다. 뒤늦게 해당 링크에 다시 들어가 보니 비자 신청이 아닌 미국 유학 정보 페이지가 떴다. 


당황했지만 환불 요구 이메일을 보낸 결과 다행히 공식 신청 수수료를 제외한 차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비자 면제도 유효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애초에 이런 일을 당하지 않거나, 이미 당했다면 침착하게 잘 대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 정보를 정리해 본다.





ESTA 신청 대행 사기 예방 및 대처법


ESTA 신청 대행 사기란?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과 ESTA

   ESTA 신청 대행 사기 수법


사기당하지 않는 법?

  구글보다 다음, 네이버

  도메인 확인하기

   ESTA 신청하지 않기


이미 당했다면?

  환불 요구

  그래도 신청은 완료된 것!

  내 잘못이 아니다






ESTA 신청 대행 사기란?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과 ESTA


한국은 미국의 비자 면제 프로그램 가입국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여행이나 환승, 사업 등의 목적으로 미국에 단기간(90일 이내) 방문할 경우에는 비자 심사를 받을 필요 없이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기만 하면 간단히 입국할 수 있다. 이 신청 시스템이 전자여행허가시스템(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 ESTA)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한 신청 절차를 악용하는 자칭 'ESTA 신청 대행' 사이트가 있다.



ESTA 신청 대행 사기 수법


미국 정부의 공식 ESTA 신청 사이트가 아닌 사설 업체가 여행자와 미국 정부 사이에 껴서 공식 수수료의 몇 배에 달하는 수수료를 편취한다. 이들은 사용자가 검색 포털 최상단에 노출되는 사이트를 공식 사이트로 여기고 신뢰한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검색 포털에 광고를 넣고, 페이지 UI도 공식 ESTA 신청 페이지로 착각하기 쉽게 꾸민다.


구글에 'ESTA 신청'을 검색한 결과. 스폰서 광고를 통해 사설 업체의 신청 대행 사이트가 상단에 노출된다. 심지어 이름에 '공식'이라는 단어를 넣은 사이트도 있다.


사실 이런 사이트는 ESTA 신청 절차를 대행해 준다는 명목으로 추가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불법/사기 사이트가 아닌 것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이런 사이트를 통해 신청하더라도 유효한 ESTA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구글 등 일부 검색 포털에서도 계속 스폰서 광고를 통해 이런 사이트를 노출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설 대행 업체를 이용하더라도 ESTA 공식 신청 사이트를 이용할 때와 똑같은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공식 사이트에서도 한국어 번역을 제공하기 때문에 별다른 도움 없이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따라서 공식 신청 사이트를 이용하나 대행 업체 사이트를 이용하나 신청 과정은 동일하다.


즉 이런 사설 업체는 실질적으로 어떤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고 단순히 신청자가 입력한 정보를 그대로 공식 신청 사이트로 옮기기만 하면서 공식 신청 수수료의 몇 배에 달하는 수수료를 중간에서 가져간다. 해당 사이트를 공식 사이트로 착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리가 없으니, 신청자 입장에서는 공식 사이트를 가장하여 돈을 가져가는 사기가 맞다.




사기당하지 않는 법?



구글보다 다음, 네이버


세계 최대 검색 포털인 구글을 국내 검색 포털인 다음이나 네이버보다 신뢰할 수도 있다. 아마 사설 대행 업체의 신청 양식 링크를 공식인 줄 알고 보내 준 내 친구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ESTA 신청 사이트를 검색할 때만큼은 다음과 네이버가 낫다.


구글의 경우 'ESTA'로만 검색하면 미국 정부의 공식 ESTA 사이트가 맨 위에 뜨지만, 'ESTA 신청'으로 검색하면 스폰서 광고를 통해 사설 업체의 신청 대행 사이트, 즉 실질적으로는 사기 사이트를 최상단에 노출한다. UI도 일반 검색 결과와 구분하기 어려워 공식 사이트로 오해하기 쉽다.


반면 다음과 네이버공식 ESTA 신청 사이트를 최상단에 노출하며, 광고를 넣은 신청 대행 사이트는 그 아래에 별도의 파워링크(CPC 광고) 섹션으로 묶어 노출하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가 적다. 그러니 검색을 통해 ESTA 신청 사이트를 찾고 싶다면 다음이나 네이버를 사용하거나, 구글을 사용할 경우 한국어 단어를 넣지 말고 ESTA로만 검색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글을 작성하는 대가로 다음, 네이버에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도메인 확인하기


오늘의 영단어 공부! 정부는 영어로 government다. 그래서 미국 정부에 속한 조직의 사이트는 URL에 government를 줄인 .gov라는 도메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ESTA 공식 신청 사이트의 URL도 .gov로 끝난다. 반면 사설 신청 대행 사이트의 URL은 .com이나 .kr 등 정부와 상관이 없어도 등록할 수 있는 도메인으로 끝난다.


사실 꼭 ESTA 신청이 아니라도 사이트 URL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적인 보안 절차다. 미국 정부 사이트는 .gov, 한국 정부 사이트는 .go.kr로 끝나고(예외: 정부24 사이트는 www.gov.kr), 그 외 비영리단체 등의 사이트는 .org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com으로 끝나는 사기업 사이트를 이용하더라도 URL의 철자를 꼼꼼히 확인해야 사기 사이트를 피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걸 뻔히 알면서 사설 신청 대행 업체에 94달러의 수수료를 뜯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를 너무 믿으면 안 된다.


기본적인 보안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링크를 보냈다는 이유로 따로 확인 없이 사이트를 믿고 이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친구를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정확히는 아는 사람이 보낸 링크라고 해도 이용하기 전에 꼭 URL과 사이트 신뢰도를 확인해야 한다. 친구도 속았을지 모르니까!



ESTA 신청하지 않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ESTA 신청 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이 애초에 신청을 안 하는 거라니, 그러면 미국에는 어떻게 가라고?


하지만 사실 미국에 가더라도 ESTA 신청이나 비자 발급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바로 괌이나 사이판 여행을 할 때다. 한국은 괌-북마리아나 제도 비자 면제 프로그램 가입국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괌/사이판에 관광이나 출장 목적으로 방문할 경우 간단한 신청서 작성만으로 최대 45일까지 머물 수 있다. 그러니까 괌을 3박 4일 여행할 계획이며 그 이후에는 딱히 미국 방문 계획이 없는 내가 ESTA를 신청한 건 애초에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얘기...


따로 비자나 ESTA를 신청할 필요 없이 괌/사이판행 비행기를 타면 기내에서 입국 신청서를 나눠 준다. 괌에서 느낀 바로는 미리 ESTA를 발급받은 우리 일행이나 기내에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한 다른 사람들이나 출입국 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다. 심사가 엄격한 정도는 ESTA 유무보다 심사관의 성향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괌이나 사이판 여행만이 목적인 경우 ESTA를 신청하지 않으면 수수료도 아끼고 사기도 예방할 수 있다!




이미 당했다면?



환불 요구


이미 신청 대행 사이트를 통해 ESTA 신청을 완료하고 턱없이 비싼 수수료를 지불했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환불 요구 이메일을 보내면 미국 정부에 지불한 ESTA 발급 수수료 21달러를 제외하고 대행 업체에서 떼어 간 수수료 차액을 환불받을 수 있다. 나는 이미 ESTA 발급이 완료되고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에 메일을 보냈는데도 무사히 환불을 받았다.


ESTA 신청 대행 사기 사이트의 문의 페이지. 여기에 신청 당시 입력했던 정보를 다시 입력하고 아래의 메시지란에 환불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적으면 며칠 안에 답장이 온다.


환불 요구 이메일은 이용했던 신청 대행 사이트의 공식 이메일 주소나 문의 페이지를 통해 보낼 수 있다. 길게 쓸 필요는 없다. 해당 사이트를 미국 정부의 공식 ESTA 신청 사이트로 착각하여 이용했으며 신청 대행 서비스 이용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해당 업체에서 가져간 수수료 중 공식 신청 수수료를 제외한 차액을 환불해 달라는 내용이면 된다. 내 경우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영문으로 이메일을 쓰고, '내게 사기를 치려는 것이 아니라면' 환불을 해 달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고 나면 처리를 기다려 달라는 자동 답신이 오고, 며칠 기다리면 환불을 해 주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이 온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에 수수료를 결제했던 계좌나 카드에서 공식 ESTA 신청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의 결제가 취소 처리된다.


함께 사기를 당한 내 친구는 분노를 담아 "이 사기꾼 놈들아, 내 돈 안 내놓으면 신고할 거야."라고 써서 보냈다가 "우리는 사기 업체가 아니라 ESTA 신청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당한 업체입니다."라는 내용의 답신을 받는 바람에 다시 한 번 답장으로 환불을 요구("뭔 헛소리야, 정당한 업체면 내 돈 돌려줘.")하고 나서야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한 번에 환불을 받으려면 분노는 잠시 접어 두고 침착하게 필요한 내용만 담은 이메일을 보내도록 하자.



그래도 신청은 완료된 것!


이렇게 사설 ESTA 신청 대행 업체에 환불을 요구해 수수료를 돌려받았더라도 다시 ESTA 발급을 신청할 필요는 없다. 이미 대행 업체에서 내가 입력한 정보를 그대로 공식 신청 사이트에 옮겨 신청 절차를 완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제 걱정하지 말고 미국 여행을 즐기면 된다.



내 잘못이 아니다


사기의 열 받는 점 중 하나는 속은 사람이 자기 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속여 돈을 뜯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다가 곧 후회가 밀려들었다. 검색 한 번만 더 해 볼 걸, 주소 한 번만 더 확인할 걸. 내가 번역한 그 수많은 사이버 보안 교육 과정은 뭐였지. 스스로가 한심했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다. 더 조심했으면 좋았겠지만 잠시 경계를 풀었다고 피해자를 탓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사기와 사기 아닌 것의 경계를 교묘하게 헤집고 들어가 이익을 보려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가 수없이 생기는데도 명목상 신청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니 불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외교부 사이트에 대행 업체를 이용할 필요 없다는 문구만 써 놓고 마는 각 정부 부처 때문이다. 검색하는 사용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사설 사이트가 광고비를 냈다는 이유로 최상단에 노출하여 혼동을 유발하는 검색 포털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신청 대행 업체에 비싼 수수료를 지불했더라도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내 잘못이 아니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 나쁘거나 게으른 놈들이 있어서 조금 일이 귀찮아진 것뿐이다. 그들이 나를 속였을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환불 요구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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