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너무 좋은데? 짜릿한데?
처음 해보는 불멍은 불냄새와 함께 쓸데없는 생각들을 날려버렸다. 그러면서 에너지를 얻을 걸까.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오늘 오랜만에 자책하지 않았잖아?
요 근래 자책하는 하루들이 이어졌다. 스스로에게 관대하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남들에게는 관대하지만 나에게는 늘 엄격하다. 욕심이 많다. 이 욕심을 버리면 스스로와의 갈등도 없을 텐데 놓치를 못한다. 그렇다고 수습을 잘하면 좋으련만 또 일을 벌여놓기에 더 재능이 있다.
하고자 하는 것들은 많고 실행력은 바탕이 안되고 그러다 보니 늘 스스로에게 아쉬웠다. 좀 더 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을까?
이런 순간들이 요새 계속 지속됐다. 그러다 어제 결국 업데이트 때문에 1년 동안 미루던 캠핑을 다녀왔다. 다녀오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데... 놀 시간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났다. 하지만 장작에 불이 붙은 이후부터는 너무 추워서 그런 건지 엄청난 불향 때문에 그런 건지 쓸데없는 생각들이 날아갔다. 그냥 멍하니 봤다.
불멍을 끝내고 아침에 친구와 서로의 코에 손을 대서 생사를 확인하기로 하고 잠들 정도로 너무 추웠다. 짧았던 캠핑을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했다. 하루 종일 추위에 떨었고 운전도 해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캠핑 때문에 일의 공백이 생겼고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좀 더 강렬했다. 도저히 이 정신으로는 작업을 못할 것 같아 바로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사람은 환경이 만든다고 하던가 집 앞 카페에 작업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스스로와 싸움에서 졌다면 난 이미 바닥과 한 몸이 되어있었을 거다.
카페에서 할 목표치를 정해놓고 마감시간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몸은 피로했으나 정신은 피로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여차하고 스스로와 타협하다면 지금 이 시간은 없었겠지. 바닥과 한 몸이 돼서 다음날 자책과 함께 일어났을 거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며 불향을 씻어내면서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타협하지 않으면 이런 느낌이구나... 너무 좋다...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만족한 하루였다. 성취감에 미쳐서 클라이밍에 빠졌던 순간이 생각났다. 이 느낌을 내가 언제 느껴봤던가. 요새 스스로와 타협을 굉장히 잘했다. 피곤하면 잠깐 침대에 누워볼까? 하다가 자고 집중이 안된다고 운동하다가 작업시간 날려먹고. 하루를 기록하면서도 애써 외면했었다.
나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건 나 자신이 아니야라고 부정한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었지. 최근에 또 그런 사이클에 빠질 뻔 했다. 오랜만에 본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나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런 순간들을 좀 더 많이 쌓아봐야겠다. 그러면 내년은 좀 더 나은 나의 버전을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