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그 시절에 알았으면 좋았으련만, 그 시절은 모르고 이렇게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아가는구나. 세상밥 눈칫밥 먹고 살아오고 있는 어느 날, 알아버렸다. 내가 사랑했고, 한편 내가 두려워 피했던 그 과거 속 사람들. 존경하면서 한편 갈증을 불러일으킨 그 사람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그들 나이가 되어보니 새삼 그들이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이 있을 때는 잘 모른다. 내 이야기가 아니면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문득 새로운 여정에 오른 길에서 뒤로 하고 지나온 길에서 '이제 알았다'라는 연약한 말을 울부짖고 후회해도 그건 연약함의 다른 면모일 뿐. 사실은 몰랐다. 정말 그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이고 그들과 같은 나이대 고민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욕실청소용 스프레이 락스와 할인하고 있는 캔커피를 사서 다소 가벼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오는 길에 옛 사람들이 생각났다. 대학교 휴학, 계약직 신분으로 만났던 그들이랑 얼추 비슷한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에 그들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시대의 변화가 꿈틀대던 그 나날, 세상은 말했다. 이제는 PC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는 모바일 시대다.
그 변화의 파도에 편승해 새로운 사업과 신생 팀으로 사회 속 작지만 단단한 획을 그으려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누군가에게 밥벌이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 인생을 베팅하는 사명이었다. 핸드폰 아니고서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쫓고 만들고.
일은 일. 사석에서 또는 오피스에서 만난 그들은 '하는 일'에 비해 검소하고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 살아가는 면모들이 습관처럼 베어있었다. 계약직 1년. 그 시간은 길면 길었고 짧으면 짧았던 날들이었다. 끝이 정해진 출발. 지금 돌아보면 이제는 공적인 일로서 엮이기 어려운 머나먼 존재가 되어버린, 기회이자 황금 같은 젊음의 세월이었다.
같은 나이가 되었다. 당시는 나도 그 정도는 살고 있을 줄 알았다. 그 조직이라는 울타리에서는 그게 평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의 현재는 나의 과거에서 생각하지 못 했던 현재이고, 불현듯 안다. 절대 같아질 수 없다는 걸. 지난 모임에서 나의 과거를 아는 친구가 말하더라. '그 시절, 그 때의 너가 가장 잘 어울렸는데'
글쎄,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걸 어쩌겠는가. 하지만 '일'을 떼어낸 '사람'으로서 바라본다면 그들에게 참 배울 점도 많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느 날 신문 구석에 자리잡은 기사에서 내가 아는 그 이름을 본다. 인터넷 기사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조금 더 찾아보니 '작가'라는 명함도 있더라.
퇴근길 하염없이 달빛을 보며 귀가하는 길목에서 주머니에 손 꽂은 채 네모난 가로등 아래 섰다. 6시 방향으로 기다란 그림자를 만드는 빛에서 나의 현재, 나의 과거, 그 너머에서 그 사람을 떠올린다. 커리어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업계 사람이 아닌지라 어차피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 속에 품은 우아한 품위와 당당한 자신감은 아지랑이처럼 드문드문 생각난다.
같은 나이, 다른 상황. 나는 담담히 그 사람을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울 점은 배우되, 다른 건 다르다는 사람을 그 존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을 쫓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을 대면할 수 있다. 만약 그 사람이 나랑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에서 만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내가 살아온 삶의 투쟁기? 글쎄, 여러 이야기와 근황을 듣고 싶다. 그저 듣고 싶다.
최근 야외 업무를 많이 보느라 손이 많이 상했다. 손가락 마디도 제법 두꺼워진 것 같다. 손톱 주변은 살이 트기도 했다.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도 잘 가려지지 않는다. 거울을 본다. 얼굴이 10년 전보다 후덕해지긴 했다. 옆으로 넙대해진 것 같다. 이마는 좀 올라간 것 같고.
만약 만나게 된다면 이런 '나'일지라도 어깨는 펴고 허리는 꼿꼿이 세워 당당하게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