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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Jul 01. 2023

발리 사는 직장인의 하루

남들과는 다르지만 나는 너무 행복한 걸

우리의 하루는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무릇, 이래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서울 사는 만 28세 직장인 여성의 하루: 

오전 7시 기상한 후 샤워, 출근 준비 
오전 7시 반 아침밥 먹고 화장하기 
오전 8시 출근 시작 
오전 8시 50분 회사에 10분 일찍 도착 
오전 9시 근무 시작 
오후 12시 점심시간
오후 12시 50분, 커피 한 잔 사들고 회사로 복귀
오후 1시 오후 업무 시작 
오후 5시 퇴근 준비 시작
오후 6시 퇴근 
오후 7시 저녁 약속 
오후 9시 귀가 
오후 10시 카카오톡 및 유튜브 
오후 11시 30분 취침.. 


뭐 대충 이렇지 않나요? 약간의 상상력과 잠깐 한국에서 근무했던 기억을 더듬어서 써봤습니다만, 얼마나 요즈음의 현실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우리가 이러고 사니까. 이러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다 보니, 질문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질문은, 시간 낭비니까요. 


쓸데없는 질문 리스트:

나는, 잘하고 있는가? 
이 하루의 루틴이, 내 몸에 맞는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의 생산성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극대화되는가?
나는 더 건강해지고 있는가? 
나는 내 일상에 만족하는가? 


대부분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라, 나쁘지 않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만족할 줄 압니다. 배 부르고 등 따습고 남들 사는 만큼 사는 거, 절대 쉽지 않은 일이란 거,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이뤄낸 당신, 축하합니다. 

보통의 평범한 행복을 누릴 자격을 따냈으니까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반복적인 일상에서 지루함을 느낍니다. 

매일이 예측이 가능한 나날이라니, 생각만 해도 몸에 좀이 쑤시고, 등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죠. 

네, 제가 그런 모난 사람입니다.


저는 남들 다 한다는 거, 남부럽지 않게 하며 컸는데도 당최 현실에 만족할 줄을 몰랐습니다. 

아, 제게는 사실 만족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였네요. 

정말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남들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이 미친 듯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평범한 게 비범한 거라지만, 저는 평범하지가 못한걸요. 


태생이 반항적인 성격을 품고 태어나, 모든 일에 "왜"를 달아대는 물음표살인마인 저는, 틈만 나면 사고를 치던 아이인 저는, 커서는 역마살과 반항심이 다분한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아, 표면적으로는 한동안 오래오래 잘 숨겼는데요. 


어느 날인가, 잘 숨어있던 제 내면의 아이는 다시금 뛰쳐나와 현생을 잘 살려 노력하던 저의 성숙한, 사회적 자아를 무찌르고 맙니다.


너, 정말 이렇게 살 거야?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려 애를 애를 썼지만, 

그 아이는 결국 또 나타나 모든 일을 망쳐놓기 시작하죠. 


학교 수업은 나가다가 갑자기 시험을 다 안 가버린다던지, 

사실은 가기 싫었던 직장에 가서 하루종일 잠을 자버린다던지.

하는 그런 뒤틀리고 비열한 방식으로요. 


정답이라 믿어왔던 저의 '현생'을 아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저는 이때 생각합니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자책하며 매일 밤 한탄합니다. 내 안의 목소리와 싸웁니다. 


"남들 다 하는 것도 못해서, 어쩌려고 그래" 

"기본도 안 되어있으면서, 혼자 튀지 못해 안달인 놈" 

"수업도 못 들으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스스로를 몸에 맞지 않는 현실에 끼워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만 

결과는 번번이 좋지 않았지요. 학교 재적 (시험 전부 불출석으로 반강제적 자퇴), 직장은 해고. 

몸은 호르몬 이상, 마른 비만, 간기능 저하, 거북목 등등에 정신은 우울증 진단. 


한 때 그냥 실패작 그 자체였습니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몸에 맞지 않는 일을 맞지 않는 억지로 계속해나가려다 보니 자연스레 병이 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다만 남들보다 지나치게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게 몸과 정신으로 더 빨리 나타난 것뿐이죠. 


저는 학교가 참 맞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고요. 


저는 덥고 춥고 일교차가 큰 한국의 사계절이 맞지 않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체질적으로 일의 효율과 몸의 면역력을 크게 떨어 뜨도록 설계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의 "밥"과 맵고 짠 국을 소화할 줄 모르는 위장을 타고났죠. (동남아 "밥"은 괜찮거든요) 


한 마디로 한국과 잘 안 맞는 거예요. 애초에 태어나길 제 몸이, 제 기질이. 


심지어 한 마디도 못 참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마는 직설적이고 원초적인 기질과, 남을 밀어붙여서라도 끝까지 궁금함은 해결하는 근성과 승부욕, 권위에 무조건 반항하고 보는 한국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최악인 반골 기절. 그런데 여자. 와중에 몸은 최약골. 


게임으로 치면, 캐릭터 설정을 했는데 뭐랄까 캐릭터 붕괴랄까요. 여러 살아남기 어려운 공격적인 기질과 피해를 잘 입는 예민한 기질이 충돌해서, 화를 불러오고 그 화에 스스로 당해서 자멸하는 캐릭터랄까요. RPG적 정의를 하자면, "체력이 매우 낮은 전사" 캐릭터인 겁니다. 불만 보면 뒤도 돌지 않고 덤비는데, 한 대 맞으면 죽는 거죠. 그런데 고도의 위계질서와 원거리 공격, 어려운 언어 정치 체계를 지닌 마법사 마을에서 태어난 겁니다. 그냥 필연적으로 안 맞는 거예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25년 정도 살았습니다만, 한 번도 제가 그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나는 한국인이라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여자애는 여자애답게"를 강요하는데, 아 죄송하지만 태생적으로 한국의 그 "여자"와는 거리가 아주 멀게 태어난 걸 어쩝니까. 그럼 일생을 나더러 평생 거짓말하면서 살라고요? 왜? 


연기에도 전혀 재능이 없는 덕에, 누가 뭐라고 할 때마다 얼굴 표정에 드러나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반항적이라 비치는 규칙을 반드시 따르지 않는 행동 양식은 항상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갈등과 문제를 빚었고, 저는 도덕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은 적은 딱히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조직 내 권위를 가진 누군가에게 꼭 문제아로 찍히기 마련이었죠. 저는 그저 직설적으로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만 - 그리고 규칙이 규칙답지 않아 질문한 겁니다만 - 제 순수한 의도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 적은 여태 없는 것 같아요. 그게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최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평생 살던 25년 동안. 제 눈에는 한국 사회가 "척"하는 사회로 보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님에도 믿는 척, 그런 척, 괜찮은 척, 이해하는 척, 고상한 척, 아는 척, 위해주는 척. 제 눈에는 그게 아주 가증스럽기 짝이 없게 보였어요. 


저 출퇴근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고요. 


이 좁은 반도에서, 인구의 절반이 경기도라는 작은 지역에 모두 모여 다 같이 막히는 도로에서 매일 몇 시간을 낭비하며, 굳이 가야 되는 필요성을 모르겠는 사무실이라는 작고 깨끗한 돼지우리 같은 곳에 갇혀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웃는 척, 따라주는 척, 연기하며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해야 한다니요. 심지어 저녁 시간에도 친하지도 않은 동료들과,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공감대라고는 전혀 없는 외모에도 예의에도 전혀 관심 없는 아저씨들과 밥을 먹으며 친목을 다지라고요? 간이 좋지도 않은데 약을 먹어가면서 저더러 즐거운 척 연기를 하라고요. 그러니까, 왜요.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데요. 
그럼 제가 원하는 건 대체 언제 할 수 있는데요. 
원래 이러고 산다고요?  
사는 게 모두에게 다 고통인 거면, 그거 문제가 아주 심각한 거 아닙니까? 



음.. 저는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데요. 자유롭게요. 


바다를 보면서, 해가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기분이 울적하면 노을을 바라보다가, 


바람을 맞으며 바이크를 타고 논밭을 따라 걷고 싶어요. 


날이 좋은 날에는 친구들을 불러 제가 좋아하는 향이 좋은 커피 한 잔 내려서 햇살을 맞고 싶고요. 


저녁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같이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나 떨고 싶어요. 


저는 예쁜 걸 좋아하니까, 예쁜 옷, 예쁜 집에서 예쁜 고양이들이랑 살고 싶고요. 


기분이 답답할 때는, 음, 머나먼 이국적인 섬에 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서,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싶군요. 


제가 상상하는 "삶"이란 건 이런 거예요. 


그런 지루하고 뻔한, 지옥같이 숨 막히는 일상 말고. 

저는 예쁜 곳에서 좋아하는 걸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곳에 살고 싶다고요. 


인생 짧다고 하면서. 왜 다들 원래 그렇다고 합리화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왜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면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면서,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예쁜 집을 짓고


예쁜 나무집을 지어서 예쁘게 꾸민 다음에요, 


날이 더우면 커피 한 잔 내려먹고


저녁이면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다가 밥을 해 먹을 거예요. 


저는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도 하나 키우고, 또는 둘, 


심심하면 논밭에 가서 걷다가 밥 한 끼 하면서 글을 쓸 수도 있겠죠


그리고는 매일, 바다를 보러 갈 거예요. 

저는 바다가 정말 좋거든요. 


배를 타고서는 아무도 없는 바다에 가서, 낚시나 할 거예요. 


주말에는 섬에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점심 한 끼 하고


저녁에는 직접 잡은 고기로, 불을 피워 같이 구워 먹을 거예요 



그리고는 친구네 강아지 배 위에 누워서 포근하게 잠들어버리는 거예요. 


네, 아주 완벽한 하루죠? 


살아보니, 정말로 완벽합니다. 내가 선택한 하루라는 건요. 


(사진들은 모두 지난 2주 동안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일상이고요.)


저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빌딩 숲 속에서 직장에 다니며, 

당신과 같은 하루를 살고 있었어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일밤 스스로를 괴롭혔죠. 

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좋아질 거라고 믿었어요. 


어느 날, 내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 일어날 수 없게 돼버렸던 날까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었어요. 


더 이상 그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 

다른 삶을 찾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어요. 


몇 년을 찾고, 헤매다가, 결국 저는 발리에서 찾았습니다. 

작고 평화로운 나의 소중한 일상 :)  


평범해 보이지만, 단 한 가지도 허투루 주어진 게 아니죠. 

모두 싸워서 얻어낸, 내가 성취한 삶. 


내가 선택한 일상이라는 것. 


그게 참 만족감을 줍니다. 


제가 이걸 내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이게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예요. 


그 지겹도록 반복되는 거지 같은 일상,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요. 

정말로 매일이 설레고 즐거울 수도 있다고요. 


그게 엄청난 부를 이륙하거나, 성공해서, 내가 어떤 '자격이 생겨서' 얻는 게 아니라, 

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아직 젊은 사람도, 돈이 많지 않은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손을 뻗어 가질 수 있다고요. 


그래서 더 이상 제한하지 말라고요. 상상을. 

내가 정말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 매일매일 내가 사는 하루가 어땠으면 하는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도 된다고요. 


그래서 만약 언젠가 -

온전히 내가 선택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하루를 살고 싶어요?


오늘과 같은 하루를 살고 싶나요? 
아니면 조금은 다른, 아니면 완전히 다른 하루를 상상할 여유가 당신에게는 아직 남아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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