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10년. 하루 꼬박 10시간. 약 36,500시간.
- 내가 소위 말하는 SKY에 들어가기 위해 바친 시간.
5년. 나의 가치관이 완전히 변화는데 걸린 시간.
- 학교에서 자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
나는 작년 여름, 나의 가치를 유일하게 증명해주던 학교에서 자퇴했다.
내가 자퇴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어서.
자퇴하기 전에 10명 정도, 내가 굉장히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물어봤었다.
학교 졸업장이 왜 필요하냐고.
다양한 답변이 있었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래도 학교 졸업장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들 잘 대답하지 못했다.
삼성에 가기 위해, 또는 나중에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승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대답에 - 저는 취업할 생각이 없는데요 - 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나면, 그저 당연히 필요하지 않나라는 당위성만 내세울 뿐, 누구도 뚜렷하게 내게 졸업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 물론, 졸업장이 있으면 좋겠지. 그러나 우리가 4+년 동안 약 3000만 원 (나의 경우에는 이 이상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왜 다니는지는 알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자퇴하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냥 돈 내고 학교 꼬박꼬박 출석만 하면 나오는 졸업장, 뭐가 어렵다고 자퇴까지 하나. 그저 회피하는 것은 아닌가?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어서는 아닐까?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학교를 그만두는 게 그냥 다니는 것보다 훨씬 힘든 결정이기 때문이다. 자퇴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아마 두 가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경우 혹은 정말 확고한 신념이 있는 도라이.
나의 경우 약간의 둘 다인 경우였다.
뭐 돈이 없다거나, 공부를 정말 따라갈 수 없다거나 그런 이유라기보다는 나는 정말 더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을 하다가는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머릿속의 사고 회로가 폭발해 개복치처럼 자폭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수년간 왜 다녀야 하는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지식인지 모르고 닥치고 하던 순간들이 수없이 있었지만, 그건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라던지,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어떤 목적에 의해 정당화되고는 했었다.
그러나 나는 20살이 된 이후로 4번의 입사, 2번의 창업과 이런저런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깨닫게 되었다. 학교가 일에도 인생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국내 및 해외에서 창업 및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평범한 직장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몇 번의 크리티컬 한 순간들이 존재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1) 100억대를 번 성공한 창업가
(2) 꽤나 성공한 변호사
(3) 서울대병원 간부급 의사
(4) 포츈 500대 기업 간부급
(5) 유명한 VC (투자자)
(6) 싱가포르 및 발리의 디지털 노마드들
(7) 그냥 개부자. 해당 국가 톱 5 재벌.
(8) 탑 1% 은행 직원
(9) 대기업 직장인이 된 선배 및 친구들
이 한국 사회의 뻔하디 뻔한 성공 방정식을 밟고 있던 정말 순응적인 모범생에서 극단적인 자퇴생이 되기까지, 어떻게 이렇게 가치관이 변화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끝도 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간단히 줄이자면 이렇다. 나에게 있어 '성공'의 개념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한다는 것
이전에 나는 성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우리나라에서 SKY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위 '생각'이라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얻게 된 것은 어마어마한 자유 시간이었다. 기존에 공부하던 10시간을 채우지 않아도 시간이 남고 돌았다. 생각할 시간이 생겼지만 처음에는 그다지 고민을 하지도 않았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성공'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뻔하게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20살의 SKY 대학생이자 여자로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길은 크게 세 가지 정도.
(1) 대기업 입사
(2) 전문직 전직
(3) 부잣집 취집
그리고 나는 왜인지 셋 다를 극혐했다. 와 닿지를 않았다. 이미 사실 주변에서 많이들 보고 듣지 않았나. 우리나라에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을 보며 우린 많이 느끼지 않았나. 저게 답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는 제4의 길로 가보기로 했다. 창업. 사실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기로 하고,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
나는 그래서 새롭게 성공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삶이 무엇인가?
이것도 사실 바로 탁하고 답이 나오는 질문이 아니어서, 나는 내가 싫은 것부터 써나가기 시작했다.
(1) 나는 돈 쓸 시간도 없이 아끼며 아끼다 50대가 되어버린 후, 내 삶을 위로하기 위해 휴양 또는 골프 여행이나 다니고 싶지 않다.
(2) 직장에 매일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한 후 40대, 50대에 토사구팽 당하고 싶지 않다.
(3) 적당히 취집해서 누군가한테 의존하며 살고 싶지 않다.
(4) 매일 실험실에 혹은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는 원하는 것을 써 내려가 봤다.
(1)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2)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다.
(3) 젊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4) 내가 '나'여도 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
(5) 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공감하겠지만, 뻔한 이야기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게 (외국인 친구들조차도) '정말 밀레니얼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그 이야기인즉슨, '이상적이나 현실적이지 못한 뻔한 소리를 하는군'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때가 많은데, 뭐, 한국 사회에서는 사실상 거의 맞는 얘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이 아니라면? 혹시 다르지 않을까? 혹시??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싱가포르에서 온 투자자에게 우연히 피칭(투자를 받기 위해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투자자는 나를 맘에 들어했으며, 미팅이 끝난 후 역으로 내게 스카우트 제의를 보내왔다. 싱가포르에서 일해보지 않을래?라고.
당시 첫 번째 창업을 규제 때문에 접고 (현 우리나라의 '타다' 해프닝을 보면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친구의 스타트업을 도우며 매일을 지루해하고 있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고 YES를 외쳤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 가본 지 10년도 더 된 싱가포르이지만 가겠습니다, 하고. 일단 한국을 벗어나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그리고 2018년 8월, 나의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계약 내용은 특이하게도 이랬다. '일단 우리 일을 조금만 도와주고, 네가 나중에 창업하면 거기 지분을 조금만 줘'라는 일의 대가로 매월 약 150만 원을 지급받는 조건이었다. 그 대신, 엄청난 뷰의 코워킹 스페이스 자리 하나와 완전한 자율 근무를 보장해줬다.
그렇게, 나의 노마드 생활은 시작되었다. 기본 소득과 자유를 보장받고 나니, 남는 게 시간이었고 이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사업을 구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투자사에 근무한다는 어떤 직함은 네트워킹을 하는데 아주 유용했고, 무엇보다 이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자기 멋대로 사는 멋진 디지털 노마드들이 정말 많았다.
- 나는 기업들에게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관리해주는 이스라엘 개발자야.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어. (이 친구는 향후 벤을 하나 사서 호주로 간다.) (30대)
- 나는 이제 기업가 정신 및 비즈니스 모델을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프랑스인 컨설턴트야. 회사들하고 일하고 여기저기 강연을 다녀. 쉬는 날엔 동남아 섬들도 여행을 가. 사이드로 내 앱을 개발하고 있어. (40대)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받은 것은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30대 및 40대까지 할 만큼 지속 가능한 일이라는 충격이었다. 이 친구들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생활 동안 이런 방식으로 살며 세상을 여행해왔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찾아 거기서 이따금씩 길게 머무르곤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가 좋아서 1년이 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인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 친구들을 보며 나는 그간의 너무나 제한적이었던 성공 방정식을 되돌아보게 됐다. 그리고는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더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 끝에, 나는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는 발리로 노트북 하나를 들고 향하게 되었다.
발리의 짱구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1순위로 뽑은 '일하며 살기 좋은 도시'이다. 내가 자리 잡은 곳은 해안가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는 짱구의 'Tribe Theory'라는 스타트업 코워킹 하우스 겸 호스텔이었다.
Dojo라는 가장 유명한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는데, 이곳의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여러 사람을 인터뷰해본 결과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사실 코워킹에 갈 필요도 없이 짱구에서는 엎어지면 만나는 게 디지털 노마드다.)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디지털 노마드 유형:
(1) 디지털 마케터
(2) 디자이너
(3) 개발자
(4) 크리에이터
(5) 트레이더
- 연령대는 주로 20~30대이며 크게 회사에 소속되어 원격으로 일하는 경우,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 그리고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었다.
- 일은 주로 Upwork, Fiverr 등에서 구했다.
- 선호 지역은 동남아 국가들, 그중에서도 발리, 치앙마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발리에서 만난 고소득 디지털 노마드의 경우 대부분 백인 IT 프로페셔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사실 3주간 발리에서 생활하며 동양인 디지털 노마드와 마주친 적이 없기는 했다), 이 점에서 디지털 노마드들은 일부 특권층만 가능한 일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연봉 상위 10% 만이 디지털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뭔가 기술이 없더라도, 영어만 할 수 있다면 DaDa라는 서비스(졸업장 필요 없음)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원격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 역시 상당히 인기가 많은 직업이었다. (월 100~300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보며 드는 생각은, 한국 역시 (동남아와 비교해서) 고소득 국가이고, 고급 IT 인재들로 넘쳐나는데 한국 사람들은 이에 대해 전혀 모를까라는 의구심이었다. 실제로 나는 한국에서 이에 대해 보도 듣지도 못했고,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는 상상도 못 해봤었다. 만약 이런 생활이 이토록 지속 가능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튀어나올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이러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생활을 충족시키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1)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ㅇ)
(2)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다. (ㅇ)
(3) 젊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ㅇ)
(4) 내가 '나'여도 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 (ㅇ)
(5) 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ㅇ)
물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적으로 내가 원하는 장소와 일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매력적인 포인트로 다가왔다. 나는 역으로 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되는 것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했다. 간단했다.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스킬을 고르고, 키운 뒤 그걸로 돈을 만들면 된다.
사실 디지털 노마드란 직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에 가깝다. 다만 내가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한 순간부터 달라지는 건 내 마인드셋이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지, 혹은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지가 아닌 어떤 생활을 해야겠다 라는 결심. 그리고 여기에 맞춘 인생 설계. 내가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직접 체험하며 배운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확신. 그리고 여기에 대해 한국에도 알려야겠다는 어떤 작은 사명감 정도이다.
나는 이제 더 휴학하면 퇴학시킨다는 학교의 협박에 의해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다시 한 학기를 다니며 느낀 것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 앞으로도 인생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절망감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대충 졸업해서 대충 (평균적으로 죽을 것 같이) 대기업 취업해서 매일 7시에 일어나 출근길 고통철을 겪고 어렵사리 출근해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허리 디스크의 위협에 시달리며 사내 정치를 피해 화장실에서 이따금 폰을 하다가 나는 회사의 부품인가라는 한탄을 하며 모든 에너지를 쪽쪽 빨린 채 집에 9시 정도에 들어와 텅 빈 집에서 폰을 하다 지쳐 잠이 들고 나면 내일이 오는 생활을 하다 보면 아마 나이를 먹고 집에서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대충 주위 눈치를 보다 적당한 사람과 결혼해서 적당히 애를 낳고 육아를 하면 나는 이미 다 지치고 늙어빠진 노후자금도 꿈도 없는 50대가 될 것만 같아서.
나는 내가 이미 꿈꾸던 삶의 방식을 찾았고, 방법도 알고, 또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도 안다.
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내가 문과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학교 없이도 얼마든지 잡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졸업장 없이 3개의 직장을 정규직으로 구해봤으며 창업해서 투자 유치도 해봤다)
오히려, 오늘날 학교란 시간 낭비에 가깝다. 내가 먹고 살 Skill이 아닌, 죽은 지식을 배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상이 완벽한 Skill-based economy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한국에만 갇혀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면, 나는 브라질 사람과 일해도 되고 싱가포르 회사랑 일해도 된다. 이 세상 그 어딘가 하나쯤, 나 써줄 회사는 있겠지.
그래서 나는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다.
뭐, 사실 적당히 미친놈이라서 그만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한국인 고졸 문과 노마드로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해보려고 한다.
올해 말까지, 원격 근무만으로 월 1000만 원을 만들어 보겠다. 내 목표는 2년 뒤, 해외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 이런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의 경험담을 보고 조금이나마 용기와 팁을 얻어갔으면 해서 이렇게 그 구구절절한 과정을 글로 남기게 되었다. 그 방법이 궁금한 사람들, 이 여정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구독해주시길 바란다.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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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2020년 3월 2일) 노트에 투박하게 적어나갔던 꿈들- 지금(2024년)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