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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풋 Sep 01. 2023

자연재해를 온몸으로 맞고 다니는 팔자(3)

태풍 탈출 대작전

태풍으로 모든 일정이 취소된 가운데 한가하게 미용실이나 다녀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뉴스.


[속보] 태풍으로 인한 강풍에 떠밀린 유조선이 간사이 국제공항(関西国際空港) 연결 철로에 충돌하여 철로 파손. 공항 폐쇄


세상에 바람이 얼마나 강력했으면 유조선이 떠밀려와 다리에 충돌을 했을까.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간사이 공항 활주로는 침수되었고 공항 내부에는 정전 사태까지 일어나 급기야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보도를 보면 공항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결항으로 공항 내 편의점 물건들이 모두 동이 나고 이용객들은 공항 내에서 침수되지 않은 곳을 골라 쪽잠을 자야 했다고 한다.


아직 공항으로 향하지 않은 우리 팀도 문제였다. 태풍이 지나가면 바로 움직일 심산이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태풍으로 간사이 공항에서는 무더기 결항 사태가 일어났다

이미 항공편은 결항되었고, 당장 공항 연결 철로가 파손되었으니 하루 만에 복구가 될 리 없는 상황이었다. 간사이 국제공항에 발이 묶였던 승객들은 국내선인 고베 공항으로 구조선을 타고 이동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간사이 국제공항에는 갈 수 없고, 고베 공항에는 이용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는 상황.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쿄에서 귀국할 수 있는 항공편을 알아보았는데 이코노미 클래스는 이미 남는 자리가 없었고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만 겨우 몇 개 남아있었다. 인당 편도에 70만 원 정도로 평소 출장 때는 엄두도 못 낼 가격이었지만, 이제 곧 재해로 발이 묶였던 사람들의 대이동(혹은 대탈출)이 시작될 것을 감안하면 여기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는 귀국이 3~4일은 더 미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타자, 비즈니스! 


클라이언트이신 부장님의 과감하고도 신속한 판단으로 우리는 일단 도쿄에서 다음날 출발하는 비즈니스 클래스 귀국 편 예약부터 서둘러서 진행했다. 대중교통 운행이 재개되는 대로 당시 머물고 있는 시가현(滋賀県)에서 전철로 신칸센을 탈 수 있는 역까지 간 후,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이동하기로 했다. 


7월 호우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열차 시간에 늦거나 길을 헷갈리면 안 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일행들과 이동을 시작한 지 반나절쯤 지났을까. 거의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도쿄에 무사히 도착해 이동 중 급하게 예약한 신바시(新橋) 근처의 호텔에 도착했다.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도쿄는, 난리통이었던 간사이 지방과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했다. 우리는 비로소-7월에 공항에 도착해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비로소'-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짐을 풀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클라이언트 분들과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유명한 우동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저녁 산책을 했다. 일본에 거주할 때 마루노우치(丸の内)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내가 근처 긴자(銀座)와 신바시(新橋) 일대를 안내해 드렸다. 호화로움과 세련됨의 끝판왕 마루노우치와 긴자 그리고 직장인 아저씨들의 성지(聖地)와도 같은 신바시를 한 바퀴 돌고 있자니 즐거웠던 일본에서의 회사원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찔끔 났다. 태풍으로 인해 비록 사흘동안 몸고생 마음고생을 했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은 행운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음날 오후 비행기였던 우리는 오전 중에 생긴 자유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기로 했다. 클라이언트 부장님은 우에노 동물원 근처를 가보시겠다 하셨고, 나는 빵순이답게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긴자의 빵집에 들러 혼자만의 달콤한 시간을 보낸 후, 근처 마루노우치의 전 직장 선배 분과 짧은 한 끼 식사도 하는 등 알차고 야무지게 자유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공항으로 일찌감치 이동해 시나리오에 없던 편안한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하여 무사히 그리고 신속히 한국에 귀국할 수 있었다. 지금 떠올려도 클라이언트 부장님의 발 빠르고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으면 우리의 귀국은 한참 늦어졌을 것이다. 

태풍 탈출 대작전 대성공!

(좌) 자유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빵순이 (우) 어쩌다 보니 타게 된 비즈니스 좌석


다음 편에는 나의 자연재해 역사의 강렬한 서막이자 여러 가지 의미로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이기도 했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야기에 관해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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