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배워가는 나트랑 한 달 살기 10

마지막도 우여곡절과 함께

by Walk홀릭


나트랑의 마지막을 장식할 리조트를 한국에서 예약해 두었다. 하루라도 빨리 리조트에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론 이 날이 천천히 왔으면 했다. 결국 이날이 온다는 건 한 달 살기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달랏을 갔다 온 후 조금 일찍 일어나 몸에 피로가 남아있지만 리조트 주변에도 구경할 것이 많기 때문에 체크인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조금 일찍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에 예약한 리조트는 빈펄섬안에 위치해 있다. 케이블카와 스피드보트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들어갈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멀리 보이는 나트랑 도시를 보면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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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빈펄 하버가 바로 펼쳐졌다. 빈원더스 테마파크 입구 주변으로 상점과 액티비티가 모여 있었다. 하루 날 잡고 이곳만 둘러봐도 시간이 다 갈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빈 상점가도 많았다. 무엇보다 성수기가 끝난 시점이라 사람이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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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빈펄하버에서 유명한 반세오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빈펄 하버를 걸었다. 일반적인 의류 매장부터 간식, 기념품 심지어 마사지샵까지 자리해 있었다. 테마파크 콘셉트의 상점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쇼핑가에 가까워 약간의 괴리감은 있었지만 섬 안에 즐길 거리가 많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다. 리조트 내 식당이 많지 않고 가격대도 높아 많은 투숙객이 이쪽으로 나와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에 다시 나와 하버를 구경하기로 하고 리조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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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엄청나게 큰 수영장이다. 나트랑 시내 호텔들의 수영장은 수영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크기가 대부분이었다. 하루의 몇 시간을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싶었지만 이제야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물은 깊지 않았고 가족 단위 투숙객이 많아 아이들을 위한 작은 풀도 따로 있었다. 그리고 튜브와 보트도 빌려줘 연령대 상관없이 즐기기 좋았다.


한참 물놀이를 즐기는데 갑자기 스콜성 폭우가 쏟아졌다. 갑작스레 쏟아진 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짐을 챙겨 리조트로 뛰어갔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비를 맞은 채로 수영장에 남았다. 중간중간 천둥 번개가 생각보다 가까이 치는 거 같아 불안했지만 어쨌든 나가지 않고 놀며 구름 속에 가려져있던 해가 떨어질 때까지 수영장을 지켰다.


비를 맞고 몇 시간을 놀자 피로와 허기가 몰려왔다. 어두워진 창밖으로 계속 비가 내리던 터라 빈펄 하버에 나가지 않고 리조트 뷔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조식 뷔페는 제공하지만 저녁은 별도 요금을 받는 곳이었다. 일반적인 나트랑 물가보단 굉장히 비싼 뷔페 가격이었지만 맛은 굉장히 실망했다. 생각보다 적은 음식 수와 퀄리티... 비싼 돈을 지불했기에 아쉬워서 어찌 먹긴 했지만 다시는 안 갈 정도로 별로였다. 저녁을 먹고 로비에 앉아 카드게임을 하며 첫날 리조트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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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리던 비는 그치고 하늘에선 흐릿한 날씨로 아침을 반겼다. 조식을 먹기 전 풀빌라존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아침운동을 하며 리조트에서의 둘째 날을 시작했다. 어제 먹었던 뷔페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제공하기에 샤워 후 천천히 내려갔다. 어제 먹은 디너의 실망감이 생생해서 걱정했지만 조식은 만족스러웠다.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쌀국수와 오믈렛, 신선한 과일까지. 다양한 음식을 담아 뉴스레터를 보면서 즐겼다. 많이 먹고 싶었지만 어제 가지 못한 프라이빗 해변을 오전 중에 가기 위해 부족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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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의 큰 수영장 옆에는 프라이빗 비치가 있어 오전 시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로 해변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닷물도 나트랑 해변가와 달리 바닷물은 맑고 모래도 고와서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위험하지 않았다. 다만, 해변가 바로 옆에서 액티비티를 하기 때문에 보트가 가까이 지나다녀 오히려 물에서 위험할 거 같았다. 해변가의 파도는 살짝 일렁이는 정도라 몸에 힘을 빼고 둥둥 떠있기 좋았고 그렇게 떠있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유를 즐겼다.


오전 시간에 수영장과 해변가에는 주로 서양인들과 베트남 현지인들만 있었다. 그 속에서 오전의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며 급한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어쩌면 ‘여유’는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 여유를 즐기기엔 생각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거 같았다. 다낭 때도 느꼈지만 상대적으로 휴가 기간이 짧은 한국인 여행객들은 이렇게 한적한 일정을 보낼 여유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오전 시간부터 빈원더스나 빈펄하버로 가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많이 봤다. 오히려 여유를 보내는 여행을 하다 보니 빠르게 채우는 여행과 천천히 비워가는 여행 모두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 달 전 다낭에 여행을 갈 때만 해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다고 잠깐 생각했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고 여유를 가지는 여행객을 보며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배우기 위해 한 달 살기를 시작한 것이기에 한 달이 끝날 무렵에 조금 더 넓어진 시야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짧게 다닌 여행이 싫었던 적도 없었고 길게 여유를 즐기는 여행이 무작정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그저 여행이 좋은 건 변함이 없었다. 이것만 보아도 나는 어느덧 여유라는 것을 몸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넘어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여유에 대해 다양한 의미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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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와 수영장을 여러 번 오가며 반나절을 물놀이만 했다. 빈펄섬안에도 즐길거리가 많았지만 리조트를 벗어나서 무언가 즐기고 싶은 생각이 안들정도로 리조트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너무 좋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초저녁쯤부터 스콜성 폭우가 쏟아지면서 날이 어두워지자 추적추적 계속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버기를 타고 빈펄하버까지 가는 것이 싫어 결국 마지막날 저녁도 리조트 안에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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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빈원더스 대관람차가 보이는 리조트 앞에 위치한 바에 왔다. 칵테일과 함께 곁들일 치킨윙과 수제 버거를 주문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가격은 현지 물가보다 훨씬 비쌌다. 심지어 한국 물가와 비교해도 만만치 않았다. 맛은 무난했고 칵테일과 함께 즐기며 쏟아지는 빗줄기와 밤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차분한 저녁 식사를 하고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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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트랑 시내로 돌아가는 날. 이상하게도 떠나는 날만 유독 날씨가 맑다. 다시 나트랑 시내에 돌아가기 전 빈원더스를 가기로 했다. 하지만 빈원더스에 있는 워터파크도 이용하는 걸 생각했을 때 퇴실 전 리조트에서 빠르게 샤워 후 체크아웃을 하고 재입장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땐 재입장이 가능하다고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장하고 나니 재입장이 안된다고 하여 워터파크는커녕 어트랙션 2번 정도 타고나서 그냥 빠져나왔다. 흥미가 사라졌고 잘못된 정보를 믿고 과감하게 결정한 것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짜증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재입장이 되는 티켓이 따로 있었던 거 같았다. 기분은 상했지만 퇴실 전 짧게 수영장에서 노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리조트 생활을 마쳤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시간은 평소보다 더 빨리 흐르는 거 같았다. 매일 와서 별감흥 없던 나트랑 해변가와 어느덧 익숙해져 무뎌진 번잡한 시내의 거리들도 뭔가 더 특별해 보였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한 달 동안 해보고 싶은 것을 거의 다 해본 것 같아 후회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본래 목적인 '여유'에 대해서 많이 배웠고 그 여유가 나중에 무엇을 하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한 달 살기가 처음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얻은 성취감으로 이곳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미 터질 듯이 꽉 찬 캐리어를 억지로 눌러 닫고 화려한 나트랑의 풍경을 뒤로한 채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