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블로그를 운영해본 적도, 제대로 된 습작 하나를 남겨본 적도,
SNS 속 인싸가 되어본 적도 없는 나.
글이 넘쳐나고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횡횡 떠다니는 이 시대에
무슨 글을 쓰겠다고 자판 앞에 앉아있는 것일까.
글을 동경했고 국문과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동경하였고, 경외시하였기에,
결국 나는 그 과에는 원서 조차도 넣어보지 못했다.
그리 나에게 글은 감히 뻗어볼 엄두 조차 나지 않는 먼 것이었다.
단어 그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나,
단어와 단어의 조합들이 활자로 배열되는 순간,
그것은 의미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펼쳐냈고,
그러기에 세상에서 가장 경외스러운 직업은 작가라 여겼다.
그것은 나에겐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썼다.
글을 통해 당시의 나와 사람들과 시간과 그 공기를 기록하려 노력했다.
멋들어지고 감각적인 사진을 찍을 기술도, 사람 얼굴 하나 제대로 그려낼 그림 실력도 갖추지 못한 내가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란 활자뿐이었으며,
그리 글이란 어느 순간에서든 어느 장소에서든 접할 수 있는 가장 공평하고 무구한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내가 그리 경외하던 글의 꼴을 갖추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리 적고 적는 행위를 통해 지나간 시간을 들춰보며 보잘것없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또 어느 순간에는 지금의 나를 통해 초라했던 그 시절을 갈구했다.
아끼는 누군가가 말했다.
"네가 글을 썼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글이 너무 아프거나,
너무 치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결국 나의 글은 아프고, 치열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생채기내는 글들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게 다시 또 그의 바람과는 다른 글을 남기려 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라곤, 온전한 플롯을 갖춘 서사도, 유려한 단어들로 빛을 발하는 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저 글을 빌어 스스로를 발화하고 남기는 행위 그 자체로서, 휘발되는 것들의 기록일 것이다.
쏟아지는 글의 향연 속에 이것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알 수 없으나,
부재로 가득 찬 시간들과 결핍으로 채워진 지금을 남김으로써
닿을 수 없이 동경하던 그것에 조금이라도 다가서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