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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Mar 07. 2024

대한항공 타고 시카고에서 인천까지 (끝!)

10월 30일

본 글은 브런치북 <떠돌이 직장인의 시카고 한달살기>의 연장선이자, 마지막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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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에 친구 집을 떠났다. 한국에서 같이 자취하다 세 달 만에 미국에서 만났고, 이후 한 달을 시카고에서 같이 지냈으니 아쉬움이 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조만간 또 보면 되지,라고 씩씩하게 다짐했건만...


막상 건물 1층에서 우버를 부르고 기다리자니 이별이 실감 났다. 울진 않았지만 친구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 다 봤다. 한국에서 그랬든 미국에서도 결국엔 성공할 거다, 친구야. 


이 동네도 마지막이구나. 다운타운과는 멀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이곳에 머물 수 있어 감사했다. 사람들은 유쾌하고 친절했고, 카페와 식당들은 차분하면서도 저마다의 에너지가 있었다. 해뜨기 전의 아침 산책, 해지고 나서의 맥주 한 잔은 못 잊을 거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에반스톤 풍경


그렇게 감상에 젖어 35분 정도 달려 오헤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버 기사님은 어느 항공사냐 묻더니 대한항공 사인 앞에서 내려주셨다. 스웨터, 선글라스, 의자와 핸들 커버까지 분홍색이었던 레게머리 기사님, 시카고 여행에 유쾌하게 마침표를 찍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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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항공 스케줄은 오전 11시 반에 출발하는 대항항공(KE038)이었다. 한국에서 올 땐 12시간이 걸렸는데, 돌아갈 땐 14시간이 걸린단다. 가뜩이나 비행기를 무서워하는데 두 시간이 추가되니 타기도 전에 엄청 긴장됐다. 


오토 체크인을 해두었지만 사람이 많지 않길래 카운터에서 종이 티켓을 받고 수하물을 맡겼다. 이후 여권 사진만 확인한 빠른 출국 심사, 신발까지 벗어야 했던 짐 검사, 그리고 예상 못했던 커피 원두만 꺼내 따로 검사하는(!) 과정을 거쳐 30분 만에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크지 않은 면세점이지만 아쉬운 마음에 곳곳을 둘러보고 게이트 앞에 앉았다. 작고 납작한 '치즈잇'이라는 과자 한 봉지를 야금야금 먹으며 탑승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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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와 마찬가지로 항공기는 'B777-300'이었다. 좌석은 이코노미 기준 '3-3-3' 구조인데, 가운데 '3' 중 오른쪽 좌석을 지정했다. 창가보단 복도 쪽이 긴장도가 덜한데,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는데 운 좋게 내 옆자리는 비었다. 빈자리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 앉은 미국인 아주머니와 만족스럽게 시선을 교환했다. 



첫 번째 기내식은 이륙하고 한 시간도 안 되어 나왔다. 메인 메뉴로 비빔밥을 골랐더니 오이지, 된장국, 수박과 파인애플, 초코 컵케이크가 나왔다. 얼마 만에 나물이랑 고추장이야! 맛은 평범했지만, 그 평범함이 어찌나 반갑던지.



밥을 먹으니 기내가 어두워졌다. 전날 그렇게 잠을 설쳤는데도 비행기에 있으니 잠이 하나도 안 왔다. 다행히 난기류도 안 만났다. 기내 엔터테인먼트로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여행 사진들을 정리했다. 


알코올의 도움을 받으면 졸릴까 싶어 맥주를 요청드렸다. "카스 드릴까요, 대항항공 맥주 드릴까요?"라고 물어보시는데, 궁금하니까 후자를 골랐다. 평범한 라거 맛이라 두 번은 안 먹을 듯하다. 졸리지도 않고 배만 부르네. 



두어 시간 후에는 떡갈비가 들어간 번과 바나나를 나눠줬다. 지루하긴 했지만 올 때만큼 긴장하지 않았다. 식은땀이 나지도,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았다. 지난 한 달을 알차게 잘 보냈다는 뿌듯함과 후련함 덕분에 마음이 평온해진 걸까. 물론, 올 때보다 난기류를 덜 만나긴 했다. 


착륙 두 시간 전에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첫 번째엔 비빔밥을 골랐으니 두 번째는 양식을 먹어보련다. 소고기 파스타를 메인 요이로 골랐고, 연어 샐러드에 초코 무스 케이크가 함께 나왔다. 맛은 그저 그랬다. 파스타엔 간이 안 되어 있어 소고기 따로, 파스타 따로 조리해 조합해 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하늘 위의 식사는 웬만한 건 잘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밥까지 잘 먹고 무사히 착륙했다. 별로 힘들지 않게 14시간을 보낸 것 같아 얼떨떨했다. 짐도 잘 찾고, 공항버스도 순조롭게 탔다. 한 달 전의 풍경을 그대로 거슬러가며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정류장에서 마중 나온 가족들과 오랜만에 인사하고, 집에 와서 짐을 차례로 풀며 진짜 여행이 끝났다는 생각에 시원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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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기억할 2023년 10월 한 달. 반은 직장인으로, 반은 여행자로 살았던 특별한 한 달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제 속도대로 흐른 것 같다. 


언제까지 디지털 노마드로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 회사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좋은 동료도, 야근 없는 워라밸도 편안해서 좋다. 그런데 한편으론 커리어 발전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항상은 아니지만 일하는 걸 꽤 좋아하고, 가끔은 성취감도 느끼는, 직장인의 신분을 아직 포기하고 싶진 않다. 


그렇담 당분간은 근로소득에 의존해야 할 텐데, 안정적인 삶을 위해선 승진이나 연봉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네. 먼 미래엔 글쓰기가 전업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니 눈앞의 선택지엔 현 회사 잔류와 이직만이 선택지에 있다. 이왕이면 원격근무를 지속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어쩌지. 그렇게 시카고 여행이 마지막 장기 워케이션이 될 수도 있단 말이지.


근데 뭐, 내 마음대로 직장 생활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많이 아쉽진 않겠다.

그만큼 시카고에서의 한 달을 정성껏, 또 알차게 보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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