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에서 만난 홍콩 친구
베를린에 도착해서도 호스텔에 묵게 되었다. 짐을 풀고 잠시 쉬려던 찰나, 바로 옆 침대의 홍콩 친구와 인사를 했다. 그 친구의 작은 부탁을 들어주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파리 일정이 겹쳤고, 그 친구가 우리와 같은 호스텔에 묵고 있는 한국인에게 돈을 빌려줬다며, 자신은 아침 일찍 떠나지만 내가 자기 대신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파리에서 자신을 만나게 되면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돈을 빌려줬다는 것도, 또 나에게 그걸 믿고 맡겼다는 것도 참 인상 깊었다. 여행자들 사이에는 ‘믿을 만하다’는 묘한 신뢰가 있는 것 같다.
그 친구는 홍콩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숙소 문제가 생겨서 그녀가 묵고 있던 에어비앤비에서 하루를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 후 홍콩에서도, 대만에서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저 여행 중의 스쳐 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진짜 ‘찐인연’이 되어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진짜 인연은 그렇게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 같다.
혼자 떠난 베를린의 밤, 펍크롤
그 즈음, 베를린의 펍크롤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서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나에게 꽤 낯설고 흥미로운 문화였다.
15~20유로 정도를 내면 여러 펍을 돌아다니며 샷을 한두 잔씩 마시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투어였다.
술도 잘 못 마시고, 혼자라 좀 어색해하던 차에 생기발랄한 미국 대학생 무리가 등장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이 아이들은 프라하에서 교환 프로그램 중인 예술 전공 학생들이었다.
“나 혼자 와서 좀 뻘쭘한데, 나랑 같이 놀아줄래?”
짧고 서툰 영어였지만, 그들은 두 팔을 벌려 환영해줬다.
패션, 미술 등 예술 전공생들이라 그런지 옷차림도 개성 넘쳤고, 에너지도 대단했다.
순진하게 생긴 친구도, 자유분방한 친구도, 모두 정말 잘 놀았다.
그들은 내가 혼자라고 계속 챙겨줬지만, 너무 빠른 미국 영어를 다 알아듣진 못해서 그냥 웃기만 한 순간도 많았다. 그날 밤 진탕 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돌아가면 영어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흔적, 그리고 불편한 대화
다음 날은 벨기에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알게 된 ‘프리 워킹 투어’에 참여했다. 가이드를 따라 걸으며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남은 거리, 히틀러가 생을 마감한 곳, 유대인 추모비 등을 둘러보았다.
그 와중에 같은 투어에 참가한 브라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전쟁 범죄와, 독일처럼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그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그건 이제 좀 잊어야 하지 않아?”
그 말 한마디에 잠시 말을 잃었다.
역사는 시간이 지나면 잊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인데. 물론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잊고 나아가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역사 투어 한복판에서 던진 말이라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럼 왜 이 투어에 참가한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이후로 브라질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스스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 계속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브라질에서 온 백인들은 유럽에서 꽤 자주 보인다. 조부모 세대의 국적을 따라 유럽 시민권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유럽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들이 인종적으로 다양했던 것과는 확실히 대비됐다.
물론 좋은 브라질 친구들도 많았지만, 책임감이 부족하거나 상대의 문화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뉴욕에서 유엔 컨퍼런스에 참가한 브라질 교수나, 학교에서 만난 의사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도 여전히 열정적이었지만, 무례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었다. 교육 수준이 시민 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역사적 위상과 개인의 관심, 그리고 경험에 따라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내 안에서는 그 말이 꽤나 무겁게 남았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도시, 베를린
베를린은 여전히 동독과 서독의 물가 차이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서유럽 도시 중에서는 장바구니 물가도 저렴했고, 무뚝뚝하고 재미없디던 독일 사람들도 의외로 유쾌하고 친절했다. 또 주말이면 강가에 모여 춤추고 수영하는 사람들, 맥주를 마시며 웃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러한 모습들이 참 건강하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많은 유럽 도시를 여행했지만, ‘독일이라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베를린이 처음이었다.
후일 대만에서 만난 독일 친구가
“베를린은 비싸서 못 살겠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오히려 그 말에 더 끌렸다.
'베를린이 비싼 편이면 독일의 다른 중소도시 중 훨씬 던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곳도 있겠군!'
이런 생각이었다.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 중에는 합리적인 장바구니 물가와 렌트도 포함되니까!
그렇게 정신없는 나의 베를린 여행은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