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나이에 민감한 사회가 있을까. 인생에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나이에 대한 고민이 따른다. 새로운 공부를 하고자 할 때,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와는 다른 일을 시작하려 할 때, 결혼을 고민할 때 모두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이 나이에 그래도 될까?' , '지금 하기에는 늦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는 암묵적으로 나이에 따라 해야 할 인생의 과업들이 정해져 있다. 그 과제를 제 때에 하지 않으면 스스로부터 늦은 삶이라 단정 짓곤 한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게 되면 신체적 한계 때문에 하기 힘든 일이 있을 수 있다. 또 나라와 지역에 관계없이 나이대에 따라 문화적, 사회적 공감대가 달라지는 점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1살, 2살 따져가며 나이를 고민하는 사회가 과연 올바른 모습인가 싶다.
문제는 나이에 따른 신체적 한계가 없더라도, 사회적 한계를 규정짓고 서로의 기회를 뺏는 일이다. 우리나라 평균 퇴직 연령이 49.5세로, 수십 년간 거의 같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기술 발달 등 다른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나이 문화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경영환경이 악화되거나 개인 성과가 부진하여 퇴직을 권유받기도 하지만,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상사로 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하 직원으로 대하기 어려워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른 퇴직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첫 취업 나이는 늦어지고 수명은 늘어가는데 퇴직 연령은 요지부동이니,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적 문제라 생각한다.
역사, 언어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러한 사회상을 만들었을 것이기에 누군가 나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쉽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 다만 나부터 먼저 이러한 악순환을 탈피하고, 누군가에게 나이를 운운하며 기회를 빼앗고 불안감만 야기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친구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할 때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인생을 시작함에는 순서가 있어도 인생을 끝맺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고 말한다. 아무도 내 삶이 언제 어떻게 끝맺어 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늦은 삶이 아닌 느린 삶을 살고 싶다. 모두가 늦을까 봐 불안한 삶이 아닌 느려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