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지만 중심은 아닌
우리는 매일 물질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물질은 삶의 가장 바깥을 이루는 조건이지만, 때때로 우리의 내면까지도 지배하려 한다. 이 글은 물질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물질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얼마나 가져야 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물질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물리적인 기반이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 즉 돈과 모든 형태의 자산을 우리는 물질이라 정의하자. 물질이 없다면 생존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삶의 주도권도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처음으로 물질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시기는 대학생 때였다. 어느 날 가세가 기울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준비하던 유학을 포기하고 삶의 여러 측면에서도 스스로 선택지를 좁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위축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창업에 도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이 잘되지 않아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걸 매일 확인하던 시절, 아주 사소한 갈등에도 쉽게 무너지곤 했다. 물질의 불안정은 내 감정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었고 인간관계까지도 삐걱거리게 했다.
그러나 물질이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때 높은 연봉을 받고 입사했던 회사가 있었다. 조건만 보면 안정적이었고 성과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당시 나는 가장 불행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 상사들의 부도덕한 언행, 과로로 인한 건강 악화. 회사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나답지 못했고, 아무리 많은 돈이 통장에 찍혀도 하루하루가 견디는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스스로 퇴사를 선택했다.
이 경험은 내게 단단한 확신 하나를 남겼다. 물질은 삶을 더 낫게 만들 수도 있지만,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잃고 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물질도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물질을 지나치게 추구할 때도 삶은 쉽게 병든다. 특히 나는 한국 사회가 물질에 대한 집착과 그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느낀다. 개인의 진로 선택에서부터 사회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까지, 물질은 거의 모든 판단의 첫 번째 기준이 된다. 얼마나 벌 수 있는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신뢰도나 가치처럼 여겨진다.
가령, 직장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대화의 대부분이 돈이나 주식, 부동산 이야기로 채워진다. 누가 어디에 얼마를 투자했고, 몇 배의 수익을 냈는지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된다. 한 번은 동료가 자신이 벌어들인 수익을 구체적인 액수까지 언급하며 자랑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 사회는 전쟁과 가난을 극복한 지 채 백 년도 되지 않았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절대적 빈곤과 생존의 위협이 일상이었다. 물질은 곧 생존이었고, 부의 축적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절박했던 기억은 개인의 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무의식에 남았다.
여기에 압축 성장을 목표로 한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지방의 지역 사회는 해체되었고, 수도권 대도시는 각자도생의 전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물질을 쌓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경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공동체는 사라졌고 서로를 돌보는 감각은 시장 논리 앞에 밀려났다.
이러한 기억과 사회 구조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여전히 물질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타인의 삶을 평가하려 한다. 그 무의식은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극심한 저출산, 불안정한 노후, 단절된 인간관계, 붕괴된 신뢰. 물질 중심의 세계관이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이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물질을 인생의 전부로 삼기보다,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든든한 바닥으로 두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물질이 부족했던 시절도 있었고, 가진 만큼 불편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을 견디며 물질을 얻기 위해 애쓰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더 소중한 것들을 함께 얻고 있었다.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 그리고 내가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 결국 나를 지켜준 건 돈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관계와 성장,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였다.
물질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 바라보다 보면 삶의 중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제 우리의 삶의 중심에 물질 보다 더 가치 있고 지속 가능한 것들이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