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질문이 이끄는 삶의 방향
삶이란 커다란 항해와도 같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 배에는 물질, 관계, 지혜, 건강이라는 항해 수단이 실려 있고, ‘의미’라는 목적지가 실려 있다. 이 글은 그중에서도 ‘삶의 의미’라는 목적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삶의 의미란 나의 존재와 행동이 어떤 맥락 속에서 정당화되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유’다. 왜 살아야 하는가,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는 것이 곧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의미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을 이끄는 내면의 기준이다. 그래서 의미는 삶의 방향이 되고 목적이 된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고통에 가장 깊이 공감하는가?”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싶은가?”
“내가 평생 탐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위와 같은 질문들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질문들 속에는 나의 경험, 감정, 그리고 오래된 갈망이 담겨 있다.질문을 던지고 붙들고 그 질문 속에서 삶의 방향을 구성하는 것. 의미는 그렇게 발견된다.
삶의 의미는 나의 내면적 갈망과 세상의 연결에서 비롯된다. 내 안의 깊은 열망이 세상의 필요와 맞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방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의미는 나만의 것이지만 동시에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나에게는 ‘자유’가 그런 갈망 중 하나였다. 나는 자유의 부재, 그리고 자기 철학 없이 살아가는 삶의 공허함과 고통에 깊이 공감해 왔다. 물론 무한한 자유가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제약과 맥락 속에서 자유는 더 깊은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각자의 삶에서 필요한 만큼의 자유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것이 단지 자유를 누리는 것을 넘어,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길이라 믿는다.
다른 하나는 ‘지혜’에 대한 갈망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를 파고드는 일은 늘 흥미로웠다. 수의대를 자퇴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학교나 전공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동물과 자연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탐구가 나에겐 더 절실했다. 당시 나는 적성과 흥미보다는 직업의 안정성만 보고 전공을 선택했지만, 결국내 안의 질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후에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인간과 사회의 움직임을 탐구하고 싶었고,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도구를 갖고 싶었다.이 모든 선택들은 결국 ‘지혜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내 삶의 의미를 실천하고 있다. 하나는 데이터와 정보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경제적 자유를 돕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스토리와 미디어를 통해 정신적 자유와 자기 철학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 틀은 단단한 삶의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은 결국 자유의 기반이 된다. 내가 남기고 싶은 지혜란 바로 그런 틀이다. 누군가의 선택을 도와주는 질문의 구조, 생각의 방식이다.
삶의 의미는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키우는 일, 마을을 돌보는 일, 회사에서의 책임을 다하는 일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내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누구에게 남기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출발이다.
의미를 찾는 여정은 결코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떠돌기도 하고,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도 한다. 그럴 땐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것도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