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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Mar 27. 2023

[치아파스#2] 의외의 힙스터 천국, 산크리스토발

커피, 초콜릿, 그리고 우연히 만난 거리의 웨딩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 de las Casas), 줄여서 산크리스.

투흐틀라 (Tuxtla) 공항에서 차를 빌려 한 시간 반 가량 달려 도착한 치아파스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자 우리의 치아파스 로드트립 베이스. 해발 2200미터의 이곳은 30도가 웃돌던 공항과는 달리 15도가량으로 선선해 우리는 스웨터를 꺼내 입어야 했다. 다섯 시 즈음이었나, 해가 뉘엿뉘엿 지는 고산지대의 colonial town - 예전 스페인 식민지 때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주변이 더 높은 산으로 빙 둘러싸인 색색의 도시, 산 크리스.


이곳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녹여 만든 진한 핫초코와 줄지은 카페들, 그리고 카페 문에 빼곡하게 붙은 수많은 요가 강습 포스터들이었다. 여기가 과테말라 국경 근처, 아직도 이름도 생소한 멕시코 치아파스 맞나요. 나는 짝꿍에게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니 이건 웬만한 미국 대도시보다 훨씬 힙하잖아.


유명한 관광지인, 비슷하게 색색의 건물이 즐비한 식민지 구도심인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고산지대 버전 같기도 하고 - 그리고 뭔가 좀 더 젊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차림새도 범상치 않다... 백 미터 밖에서 봐도 이건 히피야, 싶은 차림새들이 속속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렇게 힙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짝꿍과 발 닿는 대로 산크리스를 맛보는데, 골목을 돌자 마법처럼 저 멀리서 신나는 음악과 웅성임이 들려왔다. 골목을 가득 채운 건 화려한 옷의 무용수와 악단, 사진사, 그리고 거대 인형 모양의 상들이었다. 거리 웨딩! 이런 행운이 있나. 게다가 이 지역 전통의 문화가 가득 배인 춤과 노래라니.

산크리스에서 만난 치아파스 웨딩

이 거리의 축제에서 내가 한눈에 반해버린 건 "파라치코(parachico)" - 흰 탈에 둥근 모자를 쓰고, 폰초를 입고서 짤랑이 비슷한 걸 흔드는 한 그룹의 댄서들이다. 처음에 봤을 땐 이름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파라치코들의 축제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도 등재될 만큼 이 지역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전통적 아이콘이었다.


"파라치코(parachico)"는 직역하자면 "소년을 위해"인데, 여러 버전이 있지만 한 전설에 의하면 - 예전 식민지 시절, 한 부유한 부인의 아들이 아팠는데, 어떤 약을 써도 병이 낫지 않아 상심하던 차에 치아파 데 코르조 (Chiapa de Corzo)에 가면 병이 나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인들을 이끌고 찾아온 치아파 데 코르조에서 아들의 병은 씻은 듯 나았고, 부인은 기쁨에 겨워 마을 주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그동안 마을의 춤꾼들이 소년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흰색으로 피부를 분장한 뒤 (소년과 유복한 부인이 백인이었나 보다) 소년을 둘러싸고 춤을 추었는데, 이 춤꾼들에게 부인이 "소년을 위해(para el chico, 파라 엘 치코)"라며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마을에서는 매년 이 일을 기리기 위해 춤꾼들이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 축제를 여는데, 이 춤꾼들과 춤을 모두 파라치코라고 부른다 한다. (위키피디아유네스코에 더 자세한 내용이 많습니다)


사실 길게 말할 것 없다. 비디오로나마 그때 산 크리스에서 마주한 흥겨움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산크리스에서의 거리 웨딩, 그 흥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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