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손길로 내린 자존감 듬뿍 모닝커피
우리 집에는 2년 차 꼬마 바리스타가 산다.
바로 우리 유치원생 아들이다.
내가 커피를 좋아해서, 출근하기 전이나 주말 아침에는 직접 내려 마시는 일이 많다. 회사에도 커피가 있고 회사 가는 길에 쉽게 사서 마실 수도 있지만, 좋은 원두를 골라 집에서 직접 내려서 가는 커피는 향부터 정성까지 여러모로 더 만족스럽다.
작년 초부터였을까.
아들이 내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불쑥 자기가 직접 커피를 내려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꼬마 바리스타의 귀여운 경력이 막을 올렸다.
처음에는 당연히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래서 커피를 내리는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함께 해보았다.
아들과 나의 커피 내리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1. 전자저울 위에 전동 그라인더용 원두 계량컵을 올린다.
2. 2인 기준 30g 정도의 원두를 조심스레 붓는다.
3. 계량컵에 담긴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누른다.
4. 원두가 다 갈렸다는 신호음이 들리면, '그라인더 녹커(Grinds Knocker)'를 작은 검지손가락으로 두세 번 튕겨 남은 원두를 탈탈 털어낸다.
5. 분쇄된 원두를 커피 필터에 옮겨 담고, 평평해지도록 필터 옆을 손으로 '톡톡' 쳐준다.
6. 30초 간격으로 2분 30초 동안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7. 다 내려진 커피를 엄마와 아빠의 잔에 똑같은 양으로 공평하게(이게 아주 중요하다!) 나눠 담는다.
처음 아들에게 드립포트를 쥐여주었을 때의 일이다.
아들이 아직 어리기에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예전에 쓰던 작고 가벼운 커피포트에 뜨겁지 않은 '미지근한 물'을 담아주었다. 다행히 커피는 무조건 뜨거운 물로 내려야 한다는 편견이 없었기에, "왜 나는 미지근한 물로 해야 해?"라는 의문 없이 꽤나 진지하게 임했다.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가만히 지켜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야무지게 해냈다. 원두를 갈고, 필터에 옮기고, 물을 붓고, 잔에 담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가져다주기까지. 놀랍고, 신기하고, 무엇보다 참 대견했다.
비록 뜨거운 물로 우려낸 완벽한 커피는 아니었지만, 그 잔에 '사랑 한 스푼'을 더하니 세상 어느 카페에서도 맛볼 수 없는 꽤 훌륭한 한 잔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맛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바리스타 2년 차에 접어든 지금, 아이는 이제 내가 내리는 온도와 똑같은 93도의 물로 제법 그럴싸하게 커피를 내린다. 집에 손님이 올 때면 약속이나 한 듯 "내가 커피 내릴게~!" 하며 나선다.
요즘은 커피를 넘어 요리에도 푹 빠졌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할라치면 어느새 두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향한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아이가 창조해 낸 새로운 조합의 요리를 맛보는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우리 뇌의 기억 중추에 가장 강력하게, 오래 남는 감각 1위는 '후각'이라고 한다. 특정 향기 나 맛으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아빠와 함께 원두를 갈며 맡았던 짙은 커피 향과 처음 맛본 그 뿌듯함은 훗날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아빠와의 따뜻했던 주말 아침'으로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원두가 갈리는 소리(청각), 커피를 내리는 모습(시각), 작은 손으로 튕기는 녹커(Knocker)의 감촉(촉각), 그리고 온 집안을 채우는 진한 커피 향(후각)과 서툰 손길로 만들어낸 맛(미각)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아들의 '커피 내리는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들에게 뜨거운 물을 허락하기까지 필요했던 건 아들의 능력이 아니라, 다칠까 봐 걱정하던 아빠의 불안을 다스리는 시간이었다. 결국 아이를 훌쩍 자라게 하는 건 완벽하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이 아니라, 기꺼이 서툰 커피를 마셔주며 아이의 세상이 넓어지길 응원하는 기다림 속에 있다."
나는 아이가 무언가를 직접 해보겠다고 나설 때, 기꺼이 그 자리를 내어주고 싶다.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자신이 만든 것을 누군가 맛있게 즐겨주는 경험은 아이의 자존감에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 그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아들로 성장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