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와인을 담는 좋은 '잔'에 대하여

좋은 와인을 찾기 전에, 먼저 깨끗한 잔을 준비하는 일

by 김영훈

아내와 나는 집에 있을 땐 독한 술을 즐겨하지 않는다.

대신 코스트코를 갈 때면 데일리로 먹을만한 적당한 가격의 와인을 몇 개씩 사 온다.

금요일 또는 주말 저녁, 아들을 재우고 나면 아내와 함께 요즘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와인을 한잔씩 한다. 거창한 빈티지 와인은 아니어도, 그 시간이 주는 여유와 편안함과 함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때 문뜩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 한 분이 말씀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와인은 어떤 잔에 마시는지에 따라 같은 와인일지라도 맛이 하늘과 땅 차이야."


그때는 그저 미식가의 유난스러운 취향이라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요즈음 내 머릿속을 맴도는 육아에 대한 생각들과 묘하게 맞물리기 시작했다. 그분이 했던 말과, 그간 보아왔던 자녀육아에 대한 책, SNS, 유튜브 콘텐츠들. 그 방대한 정보들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로 수렴되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 아는 평범한 것이지만 너무나 기본적이고 중요한 진리.


물이나 와인이 어떤 잔에 담겨있는지에 따라 맛이 다른 것처럼

아이도 어디에 담겨 자라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아이를 담는 부모라는 그릇]

아이를 가치 있게 만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치 있는 소중한 아이가 담길 수 있는 '바람직하고 건강한 잔'이 먼저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잔'은 우리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환경이다.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 또한 그런 사람이 먼저 되어보아야 한다. 아이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운동화 끈을 묶고 아침 러닝을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알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배우고 학습하며 즐거워하는 뒷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이야기지만 요즘 들어 그 중요성을 더 자주 생각한다.


거창한 훈육의 기술보다 강력한 것은 아빠가 책을 읽는 뒷모습이고, 엄마가 타인을 배려하는 다정한 말투다. 아이에게 책의 중요성을 백 마디 설명하는 아빠보다, 거실 한편에서 묵묵히 책장을 넘기는 아빠가 되고 싶다.


[거울뉴런_Mirror Neurons]
인간의 뇌에는 타인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거울 뉴런'이 있다. 특히 모방 학습이 활발한 유아기 자녀에게 부모의 행동은 가장 강력한 학습 자극이다. 아이에게 "책 읽어"라고 말하는 뇌 자극보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각적 자극이 아이의 뇌에 훨씬 더 깊은 각인을 남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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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윙크를 자주하는 편인데, 그것 때문인지 아들도 윙크를 참 자주한다.




['말하는' 아빠보다는 '보여주는' 아빠로]

아이를 더 비싼 와인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부모는 많다.

하지만 그 와인을 담을 잔이 얼룩져 있거나 금이 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본연의 향을 읽고 만다.

부모라는 잔이 맑고 단단할 때, 그 안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고유의 빛깔을 낸다. 와인의 풍미를 결정짓는 것이 포도의 품종만이 아니듯,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 또한 아이의 재능만이 아니다. 결국 육아란 아이를 가르치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어떤 그릇인지 매일 닦고 확인하는 숭고한 수행의 과정일 수 있다.


나는 아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아빠였으면 좋겠다.

'잔소리' 대신 '보여주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아이에게 책이 중요하다 설명하기보다는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빠였으면 한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잔'인가요?


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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