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이 심리학자면 생기는 많은 일들
[한국심리학신문=노민주 ]
하루 종일 영화와 함께해도 질리지 않고,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영화광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씨네필’이다. 이들은 수많은 영화를 보고 감상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영화와 관련된 많은 것들에 열광한다. 씨네필이 심리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씨네필이 심리학자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씨네필이자 심리학자인 ‘씨네필 심리학자’는 영화라는 매체가 매력적인 이유를 심리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 우선 영화는 주관성을 통해 이미지를 해석할 수 있는 ‘놀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바꿀 수 없는 현실과 달리 영화 속 한 장면을 통해 스스로 상상적 체험을 하며 놀이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영화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핍진성’과 ‘편재성’을 통해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는 모두에게 공감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영화는 심리적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다. 영화에 담긴 심리적 은유와 상징을 통해 우리는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영화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공감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심리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씨네필 심리학자는 사람이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심리 기제를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영화 속이라는 심리적으로 안전한 거리에서 등장인물들에 여러 가지 다양한 자신과 감정과 생각을 투사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등장인물과 동일시를 사용하여 자신의 내면적 욕구를 해소한다. 동일시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억압된 감정을 방출하는 정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태도와 행동을 선택하는 것을 관찰하고 배우는 관찰학습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에 심리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에 씨네필 심리학자는 더욱 영화와 심리에 열광한다.
씨네필 심리학자는 단순히 영화의 심리적 특징과 영화를 볼 때 사용하는 심리 기제를 알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심리치료에도 영화를 이용한 '영화 치료'를 사용한다. 영화 치료는 개인적 치유와 변화를 위해 영화를 의식적으로 관람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대안적인 해결 방법을 습득하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정서적 통찰을 깨우치도록 하는 과정이다.
영화 치료는 스스로를 돕기 위해 영화를 활용하는 자기 조직적 영화 치료, 영화-내담자-상담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내담자의 변화를 돕는 상호작용적 영화 치료, 수동적인 영화관람에 그치지 않고 보다 주체적으로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표현 영화 치료까지 총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치료는 개인적 용기, 아동학대, 죽음 등 자신의 상황에 맞는 영화를 골라 본 후 영화의 상황, 인물과 동일시하고, 그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통찰을 얻은 후 삶에서 적용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자면 막연하다 느껴지는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꿈을 위해 도전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주인공 미아를 보며 본인의 계속 실패하는 모습과 동일시 하게 되고, 절망감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결국 열정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는 통찰을 얻은 후, 열정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하는 삶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영화 치료에서 영화는 지시적 접근, 정화적 접근, 연상적 접근을 사용한다. 지시적 접근은 등장인물의 행동을 통하여 본보기를 제시하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여 스크린 속 인물에 대한 행동을 평가하게 함으로써 치유한다. 정화적 접근은 영화를 보면서 웃음, 분노,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억압된 감정을 방출함으로써 감정적인 정화와 고양 상태를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치유한다. 연상적 접근은 영화를 본 후 자유 연상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중요한 타인에게 갖는 감정으로 치유한다.
영화 치료에서는 ‘의식적 지각’을 가지고 봐야 한다. 내가 지금 앉아서 화면을 보고 있고, 영화라는 것을 이해하며 감정적 거리를 두며 영화를 보는 것이다. 의식적 지각은 손에 땀이 나는 등 다양한 신체 반응에 대한 자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오락적 관점이 아닌 치유적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오락적 관점’은 스토리에 초점을 두고, 배우들의 행동을 보면서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관점이다. 엔딩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고 최종목적이 재미이다. 이에 비해 ‘치유적 관점’은 스토리보다는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관계를 통해 결과를 이해하고, 엔딩보다는 전개 과정을 눈여겨보는 관점이다. 배우가 아닌 자신에게 시선의 방향을 돌려 내면에서 일어나는 상태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마음의 변화 관찰과 분석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으려 하는 관점이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이후 세상에는 수많은 영화가 존재하고 지금도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영화의 가능성이 끝없이 커지듯이 영화 치료에 대한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게 커지고 있다.
기사의 제목인 ‘씨네필과 심리가 만나면 세상을 바꾼다’처럼 영화 치료는 미술 치료처럼 보편화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영화 치료를 위한 영화가 제작되고, 영화 등급 분류에 영화 치료에 관한 규정이 포함되어 사람들이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바뀌는 등 우리의 세상을 바꿀 것이다. 어떤 것에 광적으로 미친 사람은 결국 무언가를 이루어낸다. 영화와 심리에 미친듯한 사랑에 빠진 씨네필 심리학자의 ‘영화 치료’가 세상을 바꿀 날이 멀지 않았다.
출처
비르기크 볼츠. (2009). 시네마테라피. 대한민국:을유문화사.
김은하 외. (2021). 영화치료의 기초: 이해와 활용. 대한민국:박영스토리.
김은지. (2023). 영화와 상담심리가 만나다. 대한민국:마음책방.
http://www.psychology.or.kr/news/view.php?idx=8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