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모벳 Feb 26. 2020

와이프의 출산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의 소회

딸천재의 고통

# 어떤 고통이지?

딸아이를 처음 만나는 날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10시간 전으로 기억의 화면을 되감아 본다.
와이프는 침대에서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다.
분만 유도제를 맞은 직후였다.
슬금슬금 신호가 오는 듯하다.
점점 고통의 파도가 철썩철썩 치더니,
점점 밀물이 시작되었다.
고통의 파도는 철썩철썩 하지만 점점 더 강하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점점 고통의 만조가 치닫는 시기가 되면,
우리네 남자들은 이때부터 좌불안석이다.
이전까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런저런 어설픈 위로의 멘트가 통했는데,
고통의 만조 때는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아우 제말 정신 사나워!’ 소리 딱 십상이다.
그렇다고 멍 때리기도 참 애매하다.
와이프의 모든 온몸의 통점의 스위치가 켜져 있으면,
그냥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 빡이 치게 된다.
너무 고통스러워 그 고통의 근원을 더듬어 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 층에,
쾌락의 스테이지에서 신나게 춤추었던 내가 있을 것 아냐.
물론 여기서 서로 간의 기억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놈은 30초의 쾌락 탭 댄스 추고 쏙 빠져나가고 나는 10달간 이게 무슨 고통이야.’
남자 입장에서는,
‘아, 내가 3시간의 장엄한 쾌락의 오페라를 공연하고 와이프에게 10달 간의 고통을 주는구나’
30초와 3시간 영겁의 시간 관점에서는 이 정도 기억의 오차는 있을 수 있겠지.
여하튼,
고통의 근원인 내가 갑자기 꼴도 보기 싫은 것은 그럴 수 있다.
‘어디 잠깐 나갔다와’라는 말에 날름 나가는 건 아마추어다.
거절하는 게 0이고 동의하는 게 1이라면,
0.78 정도의 대답을 해야,
재차 ‘괜찮아 잠깐 쉬었다와’ 소리가 나온다.

# 그 영원한 고통

나도 온통 신경을 썼더니 신경 다발에 과부하가 걸렸다.
산책길이 편치 않다.
잠깐 벤치에 앉아 얼마나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던 게 기억난다.
통증의 주관적 느낌을 수치화한 ‘맥길 척도(McGill Pain Index)’를 찾았지.


1위는 작열통이라는 불에 타는 통증,

2위는 신체 절단이고 뒤이어 3위가 첫 출산이다.

4, 5위도 출산 관련이다.

진짜 와이프를 리스펙트 하게 된다.

성별이 다르다 보니 도무지 출산의 고통이 상상이 가진 않는다.
고통을 추정하자면 급소 가격의 고통을 증폭하는 거로 상상하게 된다.
보통 큰 사고가 없었던 남자라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급소 강타일 것이다.
그리고 가끔 인터넷에 출산의 고통이 더 크나, 급소 강타의 고통이 더 크니로 싸우고 있다.
아니 왜?
난 당연히 출산의 고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서로 고통을 교환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난 차라리 급소 강타를 선택한다.
물론 이 선택을 하고 진짜 맞아야 한다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갑자기 키보드를 치는 손에 열기가 올라오며 땀이 난다.
나야 출산 과정을 옆에서 함께 있었으니 출산의 고통에 대해 짐작하겠지만,
싱글이라면 급소의 고통이 더 클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너무 말도 안돼 보일 수 있는데,
나름 급소 타격에 의한 고통은 꽤 유니크하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해 좀 디테일하게 설명해 보겠다.
보통 남성들은 급소 가격의 세례를 받는다.
첫 세례를 받고 나면 의식, 무의식에 매우 강력한 메세지가 새겨진다.
절대 거기는 보호해야 한다라는.
나 역시 첫 세례가 생생히 기억난다.
꼬꼬마 시절,
아직 급소의 고통을 몰랐을 때,
시소 위를 균형 잡으면서 까불 거리다가 발이 미끄러지며 그 세례의 순간이 왔다.
퍽!
갑자기 온몸의 통점이 스위치가 파팍 열리며 몸이 제어가 안되었다.
그대로 얼굴로 모래 바닥에 쓰려졌다.
얼굴에 모래 묻고 모래가 입에 들어가고 그런 건 문제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숨이 안 쉬어지며 ‘내가 어떻게 잘못되었나’ 그런 어지러운 생각이 왔다 갔다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겨우 회복했다.
그리고 소년은 결심한다.
‘죽어도 거기는 지켜야 돼 교’의 열성 신자가 되기로.
이건 나 하나 만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두 발을 딛기로 결심한 이래,
모든 수컷들의 원초적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교리다.단적으로 축구에서 프리킥 상황을 보면,
저 공에 맞으면 얼굴 골절이 될 수 있지만,
남자들은 얼굴에 맞고 기절할지언정 급소가 언제나 1순위다.

여성 선수들과 스탠스가 명확히 다르다.

# 최후의 보루

나는 남자들끼리 싸울 때 이 급소에 대한 남성들의 원초적인 룰에 새삼 놀라곤 한다.
남자 중고등학교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곤 한다.
그냥 주먹다짐은 애교고,
대걸레로 머리 때리는 놈,
의자로 찍는 놈,
머리에 드랍킥 날리는 놈,
온갖 놈들이 등판하는 데,
급소를 때리는 놈은 한 놈도 없다.
서로 급소를 때리지 않기로 한 것도 아닌데 절대 거기로 손이 안 간다.
상대를 죽이고 싶다면 차라리 죽일지라도 급소만은...
알다시피 급소 한 방만 때리면 무조건 이긴다.
덩치 차이 아무것도 없다.
상대가 격투기 선수라도 급소는 훈련할 수 없기에 한 대 맞으면 그 자리에서 숨 못 쉬고 쓰러진다.
가끔 티브이에서 여성 호신술 장면이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저렇게 복잡한 기술을 가르칠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급소를 때릴 수 있는 훈련이 훨씬 효율적일 텐데.
한 대 맞는 순간,
거구라도 3분 간 바닥에서 숨 제대로 못 쉬고 헉헉대고,
10분 정도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엉거주춤거리기에 충분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아우 다시 생각해보니,
진통 시간만큼 급소를 계속 맞는 거 할래 출산의 고통을 느낄래라고 선택하라면,
지금 심정으로는 출산의 고통을 선택할 것 같다.
게다가,
급소는 명백히 아무런 보람도 없는 고통인데 비해,
출산은 고통의 대가가 너무나 값진 것이니 말이다.
급소 한 대 맞는 것으로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계속 맞을 순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구체적으로 상상하니,
갑자기 다리를 꼬게 되고 손이 땀으로 젖어오네.
아,
이 내재적인 공포.

작가의 이전글 남편과 아빠 사이의 경계인의 관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