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레이 Apr 29. 2019

이름이 중요해

책이 출간되면 간략하게나마 부족했던 부분과 다음 작업에 참고할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당시 막 출간된 책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갈 때였다. 아쉬운 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하마터면 손을 번쩍 들어 작업 내내 계속 걸렸으나 수정할 수 없었던 부분을 말할 뻔했다. “저자의 이름이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일만 하지 않습니다>(원제: Rest)라는 책 얘기다. 저자의 이름은 '알렉스 수정 김 방'. 딱 봐도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데, 그 연유를 들어보니 딱 봤을 때의 느낌 그대로였다. 그는 한국 출신으로 방은 아버지의 성, 김은 할머니의 성이다. 수정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어쨌든, 책을 출간하면 정부기관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빠꾸'를 먹었다. 반려 사유에는 '이름을 제대로 입력하세요'라고 건조하게 쓰여 있었다. 순간, 저자의 이름에 새겨 있는 이주와 정착의 역사,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 겪었을 투쟁과 적응의 시간에 대한 직원의 무시 혹은 무지에 화가 났던 건 아니고, 도서 등록 재신청을 해야 한다는 점에 화가 나 키보드를 파바박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아, 뭐래, 짱나게.” 이름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여기서 맥도날드의 탄생과 성공 과정을 그린 영화 <파운더>를 한번 보자. 동네의 작은 음식점이었던 맥도날드를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뺏어(?) 거대 기업으로 일군 레이 크록이 그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자기가 정말로 갖고 싶었던 건 다름 아니라 '맥도널드'라는 이름이었다는 것. 친근하고 따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너무나도 미국적인 그 이름 말이다. 딱딱한 발음에다 슬라브계의 성씨인 크록은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역시 '이름빨'이 중요하다.

여기서 하나 짚고 가자면, 패스트푸드 브랜드 맥도날드는 '맥도날드'로 표기하고 미국의 성씨 맥도널드는 '맥도널드'라고 표기한다. 빅맥의 치즈처럼 잔뜩 늘어지게 맥도~널드, 라고 발음해야 한다(아님 말고).

이름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2018년에 출간된 <모든 순간이 너였다>라는 책이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저자 이름이 멋있어서 이 책을 집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개떡 같은 얘기 같지만 찰떡 같이 말이 되는 얘기이기도 했다.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왜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라는 가을방학의 노래도 있지 않은가. 저자 이름은 하태완인데, 어딘지 모르겠지만, 멋있다. 그냥 멋있다. 팔리기도 엄청나게 많이 팔렸다. 이름은 힘이 세다. 

한편 도서 등록 직원에게도 외면받은, 우리 알렉스 수정 김 방의 책 <일만 하지 않습니다>(원제: Rest)는 시장에서도 외면을 받았다. 초판도 다 못 팔았다. 결국, 이게 다 이름 때문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2019년 1월 28일_나는 쓰레기와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