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 비새지 않을까. 더우면 습기 차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나의 운명을 받들고 살아간다. 가구는 덩치가 커서 넓은 창고가 필요한데 튼튼하고 넓은 창고는 비싸다. 마음이야 천정에서 에어컨 나오는 대륭테크노타운 아파트형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만, 현실은 변두리 샌드위치 판넬 건물도 버겁다.
판넬 건물이 비 새는 데는 새 건물 헌 건물 없다. 많이 오면 샌다. 올해 멀쩡해도 내년에 샐 수 있고, 내년에 멀쩡해도 후년은 보장 못한다. 나이 들어 생기는 당뇨, 고혈압, 디스크, 류마티스 관절염등 완치되지 않는 만성 질환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누수 침수 결로 습기도 내가 하는 일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가구로 가득 찬 창고는 그늘이 많아 어둡다. 비는 어디서 샐지 모른다. 새더라도 어두운 창고 바닥에 물기를 금세 알아채기 어렵다. 위에서 흘렀는지, 옆에서 들이쳤는지, 아래서 스몄는지 창고 바닥에 흥건한 물을 발견했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물이 내 발밑까지 흘러 왔다는 것은 손쓰기 어렵거나 손쓰기 늦은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디자인이 후진 가구, 하자 있는 가구는 손해를 보더라도 팔 수 있는데, 비에 젖은 가구는 팔 방법은 없다. 젖은 가구는 비 그치면 잘 말려서 뽀개고 분리해서 돈 주고 버려야 한다. 창고에는 디자인이 후진 가구, 하자 있는 가구, 잘 팔리는 가구가 섞여 있는데, 운명이란 건 원래 얄궂어서 비에 젖는 가구는 언제나 그럼 그렇지, 하필이면, 역시나다.
지난 세월 '어서 와, 가구는 처음이지?'라며 호된 신고식을 시작으로, 잊을 만하면 '일은 잘 되는가?' 하면서 불쑥불쑥 찾아왔다. 며칠 전 어두운 창고 바닥에 반짝하는 것이 보였다. 설마 하며 손으로 더듬어 봤더니 축축했다.
핸드폰 후레쉬를 켰다. 발아래를 비췄다. 불빛을 바닥에서 통로를 따라 흝었다. 아.
'나 왔네'
'자네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