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민 Oct 29. 2020

죽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

- 막 눈 듯한 개똥을 피하려다가 코를 뒤룽뒤룽 달고 뜀박질하듯 걸어가는 초등학생과 부딪칠 뻔한다.


- 짐승이 몸을 털 듯 그가 도리질을 한다.


- 각각의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욕이 후렴구처럼 따라붙는다.


- 가브리엘의 시신이 든 서랍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미끄러져 나온다.


- 기대로 가득한 긴 한숨을 내뱉는다.


- 흔히들 죽음은 실패이고 출생은 승리라고 생각하지. 죽음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과 연결 짓고 출생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정반대야. 죽음은 우리를 모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거니까. 우리는 순수한 영혼이 되지. 가벼워지는 거야. 반대로 곰곰이 따져 보면 태어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야. 정신의 가족을 떠나 네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모인 육신의 가족에 안착하는 일이니까. 태어나서 한참 동안은 혼자 일어서지도 말하지도 못하잖니. 


- 그에게 적이 많지 않았아요. 그의 분야에는 경쟁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죠. 그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이유가 없었어요. 다른 작가의 독자를 빼앗아 온 게 아니라 전체 독자 수를 늘리는 데 기여했죠.


- 아니, 됐어, 이미 늦었어, 나 삐졌어. / 이제 하다 만 농담의 위력 을 깨달았지? 궁금해 죽겠지?


-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더니 몸을 일으켜 찻잔을 들고 온다.


- 고양이들을 차례로 쓰다듬으면서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 '긴쓰기' 

   일본 문화에서는 깨진 물건이 온전한 새 물건보다 더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보수 과정을 통해 그것이 더 흥미로운 물건으로 거듭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건을 고쳐 더 좋게 만드는 행위를 가리키는 긴쓰기 (<금으로 이음>이라는 뜻) 라는 단어도 존재한다. 긴쓰기의 기원은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자신이 사용하던 다기가 깨지자 중국에 보내 수선을 의뢰했다. 다기가 깨진 부분에 보기 싫은 철끈이 묶인 채 돌아오자 쇼군은 진노했다. 그러자 일본 장인들이 이음매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혀 깨진 부분이 드러나게 다시 수선을 했다. 깨진 부분을 잇는 금방을 일종의 장식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수선 방식이 자리를 잡자 쇼군들은 더 이상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았다. 물건에 생긴 흠결을 감추기보다 그것의 가치를 살려 제 2의 생명을 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긴쓰기가 인기를 얻자 일부 수집가들, 특히 다인들 사이에는 금박을 입혀 수선하기 위해 일부러 도자기를 깨는 유행까지 생겨났다. 물건에 제 2의 삶을 불어넣는 이런 긴쓰기 방식에는, 비극을 겪는 과정에서 부서졌다 회복된 인간이 삶의 풍파를 전혀 모르는 온전한 인간보다 훨씬 매력 있다는 생각 또한 담겨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