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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Mar 05. 2020

취업의 시점에서

짝!!!


 대학생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던 저와 아내는 졸업을 앞둔 시기에서부터 구직 및 취업을 하며, 서서히 사회에서 자리 잡아가는 과정까지 곁에서 함께 해왔어요. 음, 조금 더 자세하게 시기별로 나누어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저희가 알게 된 것은 2013년, 이 시기에 했던 대외활동을 통해서였어요. 2년간 지속했던 활동이었는데 1년은 대학생으로서 대외적인 활동을, 나머지 1년은 앞선 1년이 만족스러워서 더 하고 싶으면 지원하여 합격한 사람들만 지속해서 할 수 있는 형태였어요. 나머지 1년은 대외적인 활동보다도 실질적인 실무에 참여하고, 나아가 인턴의 역할까지도 경험해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저와 아내는 총 2년간 활동했는데, 서로 얼굴만 아는 관계였어요. '아~이런 오빠가 있구나', '맞아. 저런 애가 있었지'

 거짓말 조금도 보태지 않고 저희 관계는   정도였어요. 그렇게 활동을 마치고  1년이 지나는 시점이었어요. 저는  좋게도 2015 7월쯤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졸업을 반학기 앞둔 상태에서 취업의 문턱을 넘을  있었죠.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래에서 다시 말씀드릴게요. 아무튼 저는 취업에 성공한 상태였지만  가지 특이한 이벤트가 발생했어요. 3개월만 있다가 출근하라는 소식을 통보받았죠. 어때요? 좋은  같죠. ,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물론 지금도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 변수가 계속해서 있었지만 말이에요.

 반강제로 당장 출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휴식도 휴식이지만,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었어요. 자기소개서로 골치 아프고 취업 걱정으로 잠 못 이루던 시간과는 완전히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마침, 아내가 대외활동의 단체 대화방에 본인이 당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하루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소식을 올렸어요. 저는 누구보다 빠르게 '할게!'라는 답장을 보냈고, 이 우연한 사건으로 인생의 엄청난(?) 인연을 만나게 돼버린 거죠.('우리 하이파이트 할까요' 글 참고)



 저는 광고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자소서도 그런 분야에 초점을 두고 적었고, 이때까지의 도전이나 경험 역시 마케팅이나 광고 분야와 관련된 것들 위주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가장 오랜 시간을 붙어 지내던 친구로부터 '승무원'에 지원해보는 것 어떻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 친구는 1학년 때부터 승무원이 꿈이 친구였고, 당시에 이미 일한 지 1년 된 승무원이었기에 아주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잘 어울릴 것 같고, 잘할 것 같다 말하며 따로 전문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해도 늦지 않는다고 격려해주며 추천해줬죠. 친구 말대로 저 역시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히 관심이 있었어요. 다만 전문학원이나 지식 없이도 이게 가능한 일이냐며 남일처럼 생각했을 뿐이었죠. 어떤 확신이 생겼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만약 잘 준비해서 승무원이 된다면 적성에 잘 맞을 수 있겠다 생각했고 흥미롭게 지원을 하게 됐어요.

 자소서를 제출하고 얼마 후 합격 통보를 받았고, 면접 준비를 위해 친구에게 물어보고 책을 읽어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매일을 지냈고, 마침내 1차 면접을 보게 됐어요. 분명 잘하지 않았지만 당차고 흥미로운 마음으로 1차 면접 치렀어요.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어요. 어땠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던 게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재미있었어요!'라고.

 며칠 뒤 합격 통보와 함께 2차 면접 일정을 안내받았어요. 이 면접만큼은 실제로 주의해야 할 점과 참고해야 할 점을 정확히 연구하면 좋을 것 같아 스터디를 모집했고,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2차 면접을 보게 되었어요. 이때도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고, 저는 똑같이 대답했죠. '재미있었어요!' 이따금씩 생각해보는 신기한 시기예요. 정말 즐겁게 할 수 있었기에 잘 된 게 아니었을까 싶은.

 이렇게 저는 2015년 7월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고, 그때 우연히 만난 아내와 연애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회사 측에서 사정이 생겨 입사일이 자꾸만 미뤄졌어요. '다음 달에 입사할 수 있으니 준비하고 계셔요'라는 문자를 다섯 번이나 받았고, 끝끝내 8개월을 기다려 입사하게 되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좋은 일 같으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시기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좋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아내와의 연애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아내가 힘들던 때에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내는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던 (저를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던) 마케팅 분야에서 잘해보고 싶어 했어요. 인턴 기간을 마치고 신입 공채에 맞춰 지원했으나 역시나 취업의 장벽은 높았어요. 다른 기업도 조사해보며 본인에게 맞는 직장을 꾸준히 찾았던 것 같아요. 한동안 자소서와 면접으로 고생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따금 도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부분은 그런 아내 옆에 앉아 함께 있었어요. 보고는 싶은데 해야 할 일은 있으니 옆에서 따로 시간을 보냈죠. 지금 생각하면 방해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결국 불평 한 번 없이 아내는 취업의 장벽을 넘어섰어요. 언제 어디서나 본인이 맡은 일은 정말 책임감 있게 해내는 아내였기 때문에 새 직장에서도 역시 제 역할에 잘 적응하고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네 번의 이직을 한 아내는 다양한 분야를 자신답게 아울렀어요. 마케팅의 줄기는 같지만 영업, 정치, 홍보, 브랜딩 등으로 다양하게 경력을 쌓아갔어요. 영업의 어떤 부분에서 본인이 지닌 강점과 약점을 깨닫기도 하고, 홍보와 관련된 센스가 어느 정도 밀리게 되면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책을 한가득 쌓아놓고 연구하는 모습 등 여러 노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아내의 가장 새로웠던 분야는 국회 쪽에서의 일이었는데, 이곳에서 나름의 정체성과 꿈을 확립해가는 듯했어요. 저는 이런 아내가 존경스러워요. 특히나 아내의 탐구력과 사고를 뻗쳐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련의 행위를 배우고 싶어요. 연애할 때부터 결혼해 살고 있는 지금까지 제가 옆에서 아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예요. 우리는 이렇듯 엇박스러우면서도 썩 괜찮은 취업의 시기를 함께 했어요. 제가 취업을 한 시기에 마침 입사 연기가 되었고 그맘때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공유했고 그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됐죠. 그 후 호감을 가지고 몇 차례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아내의 노력을 곁에서 볼 수 있었고, 응원할 수 있었죠. 그러한 시기에 느꼈던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건강한 조화를 이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아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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