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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Feb 13. 2020

못다 말한 취미들

(번외 편)

짝!!


 처음 하이파이브를 기획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내와 함께 하는 취미를 크게 분류해보면 다섯 가지 정도로 나뉜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즐겁게 회상하며 기록해왔는데 굵직한 것들만 굳이 분류하자면 다섯 가지인 것이지, 우리가 함께 한 취미를 비롯해 새롭고 즐거웠던 시간들은 셀 수 없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더 많이 말하고 싶지만 다른 것들은 이어서 쓰게 될 글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여볼 예정이에요. 그러니 '사랑은 하이파이브'의 글 곳곳에서 티 안 나게 풀어낼 테니 방심하며 읽어주세요.


6. 구제시장과 찻집


 기존의 다섯 가지에서 추가로 뭘 더 말하고 싶었길래 번외 편을 만들었나 궁금하셨죠? 음, 특별한 건 아니지만 약간 남다르긴 한 것 같은 주제예요.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는 구제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커피만큼이나 차를 좋아해요. 그래서 백화점 데이트는 거의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별로 안 해봤고 심지어 가더라도 욕실용품이나 가전제품 외에는 딱히 구경하지도 않아요. 카페는 자주 찾아가지만 보통 각자의 업무를 하기 위해 가고, 분위기 좋은 찻집을 데이트 삼아 가려하죠. 집에서도 원두를 직접 갈아 커피를 내려마시기도 하지만, 둘이 대화를 하거나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차를 우려 마셔요.


 원래 구제시장은 아내가 좋아했어요. 저는 굳이 따지자면 백화점파였어요. 일단 백화점에 가면 모든 게 다 있어요. 금액도 딱 정해져 있고 일하시는 분과 실랑이할 필요도 없어요. 시설도 깔끔하고 처리되는 방법들도 깔끔하죠. 배고프면 에스컬레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됩니다. 푸드코트가 있죠. 한식, 일식, 중식, 양식, 거기에 간식과 후식까지! 저는 고르기만 하면 되죠. 상쾌한 실내에서 깨끗한 신상품을 구경하고 고르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얼마나 지출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기분이 좋아져요. 저는 이 맛에 백화점을 다녔어요. 물론 자주 가는 편은 아녔더라도 말이에요.

 옷을 말끔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 반면, 아내는 일단 잘 입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색 조합이면 색 조합, 레이어드면 레이어드. 그래서 어떻게 옷을 고르는지 궁금했어요. 알고 싶어서 쫓아갔는데 그때 처음 가본 곳이 광장시장에 있는 구제시장이었어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풍기는 헌 옷의 쾌쾌한 냄새와 빈틈이라곤 없는 빼곡한 옷들, 그사이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나있고, 살면서 입어볼 상상조차 안 해볼 것 같은 의상이 눈에 띄었어요. 망설였어요. 너무 낯설었거든요. 제가 망설이는 동안, 아내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이 미로 같은 곳을 헤집고 다녔어요. 길치라서 단골가게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원하는 옷이 있는 가게 위주로 다니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부지런히 아내를 따라갔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저도 옷들을 구경하며 고르고 있더라고요. 평소 입어보고 싶었지만 백화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스타일이 보이기 시작했고, 일단 값이 저렴했고, 옷 상태도 새 옷을 사서 한 번 세탁하고 난 뒤와 같을 정도로 멀쩡했어요. 게다가 인심 좋은 가게 주인분을 만나면 더 좋은 가격으로 맞춰주시거나 다른 옷과 아이템을 더해서 주시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에서 저 역시 구제 홀릭이 되어버렸죠.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물론 지출이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백화점에서 한 벌 살 비용으로 세 벌, 가끔은 네 벌까지도 살 수 있었어요. 네, 그래서 세 벌 이상씩 샀어요, 에헴.

 


 다른 주제로 넘어가 보면, 저는 커피의 맛은 좋아하지만 커피가 몸에 딱히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원래 잘 안 마셨어요. 카페라는 공간은 좋아하지만 커피 자체는 최대한 자제하거나, 주문하더라도 하루 한 잔이라는 원칙 하에 마셨어요. 대신에 차를 마시거나 과일주스를 마셨죠. 그리고 아내는 커피를 연하게 내려 마시는 걸 좋아했어요. 시킨 커피를 다 마시지 않고 꽤 많이 남겨놓지만 카페인의 힘을 잘 이용하는 편이죠. 다만 언제나 차 문화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 했어요. 어머님께서 다도를 할 줄 아시는 것도 영향을 줬고, 스스로도 그 분야에 흥미를 느낀 것도 있고. 그래서 처가댁에 내려가 조금씩 배워보기 시작했고, 집에 와서도 정보를 찾아보고 찻집을 방문하며 질문했어요. 그러다 보니 카페보다는 찻집을 한창 찾아다녔고 차를 내리고, 마시며 보내는 시간에 빠져들었어요. 정말 좋더라고요.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날 하루 어떤 향과 맛을 끌려하는지 이야기한 다음, 적정 온도로 물을 데워 내려 마시는 시간이 저는 지금도 정말 좋아요. 



 얼마나 좋으면 도자기를 배우러 가고, 만들러 간 첫날 그곳에서 찻잔과 주전자를 만들어왔을까 싶어요. 이후에도 차와 관련된 작품(?)을 여럿 만들어 왔었는데 볼 때마다 귀엽고 웃겨서 혼났어요. 차가 좋아진 건지, 아내가 이렇게까지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다 보니 함께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차'라는 주제만 떠올려도 마음이 편안하고 좋아요. 우리 사이의 모락모락한 저녁이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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