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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Feb 06. 2020

내 단짝 필름카메라

짝!!


5. 내 단짝 필름카메라


 이번에는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에 대해 소개해드리려 해요. 아내와 함께하는 여러 취미 중에서도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바로 필름카메라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살살 더워지는 초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한두 번 빼고는 가본 적 없던 광명사거리에서의 약속이라 장소가 선명하게 기억나네요.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맥도널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멀리서 손 흔들며 반갑게 다가온 아내는(당시에는 여자친구) 나를 보자마자 선물이 있다며 어깨에 메고 있던 에코백을 뒤적였어요. 챙겨 온 물건들이 많았는지 한참을 찾아 건네준 물건이 일회용 필름카메라였어요. 당시 저로써는 아주 당황스러웠어요. 사진을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딱히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그맘때쯤 스마트폰으로 간혹 찍어뒀던 사진들에 대해 괜찮게 찍는다고 칭찬을 받았던 때였어요. 하지만 그게 다였는데, 막상 카메라를 선물로 받으니 좋은 것보다도 당황스러운 느낌이 더 컸어요.


 "우리 각자 하나씩 들고 지내면서 필름 채워보자. 그리고 스캔이랑 인화까지 해보자!"


 아내가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건네며 했던 말이었어요. 지금까지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취미라는 걸 가지게 되었던 순간이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뭘 찍어야 하는지, 이렇게 찍는 게 맞는지, 나중에 받을 때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난감했어요. 방금 셔터를 누르긴 했는데 제대로 담기기나 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인화는 알겠는데 스캔은 뭔지 감이 안 왔거든요. 참고로 스캔이란, 필름을 웹하드나 메일 또는 카카오톡으로 사진 파일로 받는 걸 이야기해요. 아무튼 아무것도 몰랐고, 몰라서 용감하게 찍어댔어요. 한 롤에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컷 수가 한정돼있다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이죠.

 나름 부지런하게 찍었더니 일회용 필카를 선물 받은 지 2주 만에 한 롤을 다 채웠어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찍었어도 한 롤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했어요. 쉬는 날, 곧장 카메라에서 필름을 빼서 전문으로 다루는 가게를 찾아갔어요. 종각에 있다는 정보를 얻고 부지런히 갔습니다. 낮에 맡겼더니 오후 6시 이후면 웹하드에 업로드해줄 수 있을 거라 하시더군요. 이때까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필름을 건네고 밖으로 나오니 궁금해졌어요. 나의 2주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바라본 시선은 무엇을 보여줄까. 그때부터는 6시가 되기만을 기다렸어요. 과장 좀 덧붙여서 표현하자면 기다리는 시간이 사진 찍었던 2주간의 시간과 같이 느껴졌어요.

 사진이 나왔다는 알림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꾸준히 웹하드를 켜고 끄고를 반복하며 기다렸는데, 정확하게 6시 3분 전에 제 이름으로 된 폴더가 업로드되어 있었어요. 다운로드를 완료한 다음, 한 번 더 개수가 맞게 저장됐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사진을 하나씩 열었습니다. 이맘때 나의 일상은 연애였기에 필름 한 롤을 모두 사랑하는 사



람과의 이야기로 담아냈더라고요. 부모님, 아내, 친구의 모습 등으로 가득 찬 사진들이 나열됐어요. 단숨에 모든 컷을 훑고 나서는 첫 번째 사진부터 하나씩, 천천히 보기 시작했어요.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집에 있는 사진 중 내가 없는 사진은 없었는데 이 필름에는 내가 아닌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의 모습만 있었어요. 마음이 시선에 그대로 담기는 걸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죠.


 첫 번째 결과물을 통해 저는 지금까지도 필름카메라를 찍는 행복한 취미가 생겼습니다. 일회용 카메라는 저렴한 반면에 선명한 결과물을 얻을 수 없었어요. 참 좋은데 아쉬운 점들이 보였어요. 그래서 저렴한 필름카메라를 하나 장만하자고 생각했어요. 저는 물건을 잘 사지 못하는 성격인데 기꺼이 구매했던 것 같아요. 풍족한 마음으로. 가장 먼저 구매했던 카메라는 캐논 AE-1이라는 수동필름카메라였어요. 무게감이 있는 이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면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찍는 맛'을 느끼기 좋았어요. 피사체의 초점을 직접 섬세하게 잡아줘야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제가 찍을 때 바라본 그대로 솔직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어요. 정식으로 공부한 적 없는 나 같은 사람도 기본값으로 설정해놓고 입문하기 참 좋았어요. 한동안 정말 자주 들고 다녔던 것 같아요.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데이트할 때도 무거운 줄도 모르고 항상 가지고 다녔어요.


 사진을 8개월 간 꾸준히 찍으며 지내던 어느 늦은 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였어요. 어머니가 거실 소파 앞에 앉아 가계부를 정리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모습을 가능한 자연스럽고 재빠르게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동카메라로는 또 한 번 초점을 잡아야 했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눈치를 채면서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인위적으로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문득 그 사실에 자동필름카메라가 가지고 싶어 졌어요. 나참, 카메라에 대한 욕심이 때마침 좋은 핑계를 찾은 거죠. 아내는 저의 이런 마음을 알고 카메라 가게로 데이트를 가자고 했고 그날 바로 새로운 자동필름카메라를 선물 받았어요. 잊을 수 없는 또 한 번의 큰 선물이었어요. 자동필카를 손에 쥔 그날부터 저의 사진 취미는 날개를 단 듯 더욱 활발해졌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아내도 마찬가지로 자동필름카메라를 장만했고, 여행지뿐만 아니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곳곳에서 사진을 기록하고 필름을 다 쓰면 스캔을 맡기고 마음에 드는 것은 인화까지 하고 있어요. 사진을 취미로 가진 지 어느새 5년이나 됐어요. 정말 놀라운 건, 가지고 있는 사진의 양이예요. 거의 4000장 가까이 기록했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들, 일상의 풍경, 키우던 화분, 소중한 시간, 아 물론 결혼사진도 제가 직접 하기도 했고요. 이렇게나 많이 기록된 사진을 보고 있다 보면, '그동안 소중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추억하고 싶은 것만 기록해야겠다 생각하고 찍으면 주로 흔들리거나 잘못되어 아쉽게 남고, 기록해두면 언젠가 재미있었다고 느낄 것이라 생각하고 찍으면 괜히 특별한 날이었던 것처럼 선명하게 남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필름 사진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은 그동안 모아둔 필름사진과 글을 엮어 '써 내려간 시선'이라는 독립서적을 출판했어요. 함께 만든 취미가 5년간 유지되고, 제 삶의 방향이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줬어요. 항상 떠올려요. 처음 일회용카메라를 손에 쥐었던 날부터 책을 펴낸 지금까지. 저는 계속해서 즐겁게 사진을 찍고 추억하고 사랑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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