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어진 필름 카메라

by 한재민

아내와 함께하는 여러 취미 중 유독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바로 필름 카메라이다. 이 취미가 나를 나아가게 했고 도전하게 만들었다.


정확한 날짜가 떠오르진 않지만, 살살 더워지는 초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두 번 빼고는 가본 적 없었던 광명사거리에서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온도와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맥도널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다가온 아내는(당시에는 여자 친구) 나를 보자마자 선물이 있다며 어깨에 메고 있던 에코백을 뒤적였다. 챙겨 온 물건들이 많았는지 한참을 찾았고, 이내 가방에서 꺼내 건네준 물건이 바로 일회용 필름 카메라였다. 사실 당시의 나는 아주 당황스러웠다. 사진을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딱히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맘때쯤 주변 사람들로부터 스마트폰으로 간혹 찍어뒀던 사진에 대해 괜찮게 찍는다며 칭찬을 받았던 때였지만, 그게 다였다. 그래서 막상 카메라를 선물로 받으니 좋은 것보다도 당황스러운 느낌이 더 컸었다.


"우리 각자 하나씩 들고 지내면서 필름 채워보자. 그리고 스캔이랑 인화까지 해보자!"


아내가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건네며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결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살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취미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뭘 찍어야 할지, 이렇게 찍는 게 맞는지, 나중에 받을 때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난감했다. 물론 작동법이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셔터를 누르긴 했는데 제대로 찍힌 건지 궁금했고 필름을 새로 끼울 때에도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인화'라는 용어는 알겠는데 '스캔'이라는 용어와의 차이에 대해서는 감이 오질 않았다. (참고로 스캔이란, 웹하드나 메일 또는 카카오톡 등을 통해서 필름을 사진 파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튼 아무것도 몰랐고, 몰랐기에 더 용감하게 찍어댔다. 한 롤에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컷 수가 한정돼있다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시선을 눌러 담아댔다. 나름 부지런하게 찍다 보니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선물 받은 지 2주 만에 한 롤을 다 채웠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용감하게 찍었다고 말은 했지만, 한 롤을 다 사용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2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가 바라봤던 시선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다 찍은 필름을 가지고 필름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가게를 찾아가는 길에 들었던 생각이다. 스캔을 맡긴 지 약 3시간 후 메신저를 통해 사진 파일을 받았다. 이맘때 나의 일상이 '사랑' 위주였기 때문인지 필름 한 롤이 온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님, 아내, 친구의 모습 등을 담아낸 사진들이 나열됐다. 단숨에 모든 컷을 훑고 나서 첫 번째 사진부터 하나씩, 천천히 다시 보기 시작했다. 가슴은 두근거렸고 눈에는 힘이 들어갔다. 외동아들로 살면서 집에 있는 모든 사진 속에 내가 없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 필름에는 내가 아닌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의 모습만 들어있었다. 묘하게 벅찬 기분이었다. 내 마음이 시선에 그대로 담기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앞선 첫 경험을 통해 나는 필름 카메라를 찍는 행복한 취미가 생겼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는 선명한 결과물을 얻을 수 없어서 쓸만한 필름 카메라를 새로 장만하게 됐다. 물건을 잘 사지 못하는 성격인데도 기꺼이 구매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구매했던 카메라는 수동 카메라였다. 셔터를 누르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찍는 맛'이 느껴졌고, 피사체의 초점을 직접 조절하여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출근할 때도, 데이트할 때도 무거운 줄 모르고 자주 가지고 다녔다. 8개월 후, 수동 카메라만으로는 자연스러움까지 기록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자동 필름 카메라도 구매하게 됐다. 두 카메라를 손에 쥔 그날부터 사진 취미는 날개를 단 듯 더욱 활발해졌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됐다.



여행지뿐만 아니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서 사진을 기록하는 것이 즐겁다. 취미를 가진 지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정말 놀라운 것은 가지고 있는 사진의 양이다. 거의 4000장 가까이 보관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 일상의 풍경, 키우던 화분, 소중한 시간, 결혼사진 등등 이렇게나 많은 사진을 종종 감상하다 보면, '그동안 소중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지금은 그동안 모아둔 필름 사진과 글을 엮어 '써 내려간 시선'이라는 독립 서적을 출판했고 좋은 기회로 작은 전시까지 진행하게 됐다. 아내가 건네준 필름 카메라가 취미가 됐고, 5년이 흘렀고, 책으로 엮었다. 내 삶의 방향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즐겁게 사진을 찍고 추억하고 사랑할 생각이며 또 다른 도전들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참나, 팝콘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