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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난 May 08. 2017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텐데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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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는 인생에 다시없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할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따뜻하고 이국적인 땅에 풀어져 있는 나를 상상하다가도 ‘이런 기회는 인생에 다시없을 텐데’가 붙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유럽보다는 멀고 가기 험한 남미를 가야할거 같았고 계획 없이 놀기보다는 뭐 하나라도 배워야 할 거 같았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조립하다가 남미에서 3개월을 여행하고 호주에서 3개월간 다이빙 마스터 자격증을 따겠다는 나름 치밀한 수를 손에 쥐고, 마지막 점검 차원에서 여행사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종로 2가 YMCA 건물에 있는 키세스 여행사다. 아마도 우리나라 유일의 세계여행 항공권(원월드 티켓)을 발권하고 상담을 해주는 곳이다.

전화벨이 꼬리를 물고 울리고 벨 소리에 응대를 하는 목소리들이 분주한 공간에서 원월드 티켓으로 세계일주를 해본 베테랑 여행가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머리가 짧고 여행 경력이 상당해 보이는 당찬 첫인상의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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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제가...6개월을 나가서 놀 생각인데요.

이런 기회는 인생에 다시없을 테니까...


로 대화를 시작하자 여행전문가가 가볍게 끊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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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 같죠?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은 반드시 다시 나가요.

스스로 그런 기회를 다시 만든다니까.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 맞게, 지금 나이에 가서 가장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에 가면 돼요.

유럽도 제대로 안 가봤잖아요?


정신이 확! 들게 자유롭게 해 주는 말.

‘네가 인생에서 그 기회를 반드시 다시 만들 것이다’라는 지령과 같은 약속. 5대양 6대주를 앞에 두고 길 잃은 양의 어깨가 가벼워졌다. 언젠가 나는 반드시 아르헨테나에, 멕시코에, 호주에 가게 될 것이라는 그 말을 믿고 계획을 전면 수정, 유럽으로 방향을 틀었다. 10월에 떠날 거니까 유럽 중에서도 따뜻한 이베리안 반도로 목적지를 정했다. 그 이후에 한 일은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새하얀 머리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한 지식을 채운 것이었다.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지 잘 모르겠길래 일단은 미술사 관련 책을 펼쳐 벨라스케즈랄지 달리의 그림을 들여다봤다. 스페인은 미술과 건축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은 책이 어찌나 많은지 보고 있자니 스페인 안 가도 되겠다 싶었다. 빈 머리가 조금 채워졌다고 긴 여행에 대한 막연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직서를 내고 환송회를 하고 항공권 발권까지 해버리니 덜컥 불안함이 왔다. 이럴 때는 무엇을 읽어야 도움이 될까 서가 안을 서성이다가 어쩌다 뽑아 든 아웅산 수치의 자서전에 이런 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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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먹지 말되, 겁 없이 살지 말라.


아웅산 수치가 나에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 문장을 기억하며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두꺼운 후드 티셔츠를 입고 도착한 곳은 나시티 하나로 충분히 따뜻했다. 어깨가 쫙 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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