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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Jul 07. 2021

 마음이 찝찝한 날

 이별 후, 다시 찾아온 일상의 행복.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이렇게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렇게 지낸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나의 주된 업무는 상사가 시키는 것을 잘 따르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오늘은 잘 따르기만 해서 사장님께 한 소리를 들었다. 얼마 전 중요한 국제 공인 인증 테스트가 있었는데 통과하지 못한 수준을 넘어 너무나 형편없이 테스트를 준비했던 직장 상사 두 명을 향한 사장님의 신뢰는 바닥으로 치달았고 결국 그 둘 중 한 명은 일을 관두었다. 남아있는 한 명, 내게 주로 업무를 지시하는 직장상사 A에 대한 신뢰 역시 무너진 상태에서 그 영향이 나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어제는 A가 내게 중요한 업무를 지시했는데 나는 A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다. 문제는 하라고 하는 일을 곧이곧대로 해서 시작됐다.

 어제 일을 끝내지 못하고 퇴근을 했던 나는 원래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오늘 아침, 사장님으로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해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회사에 나가보니 사장님은 내게 이미 기분이 언짢은 상태에서 어제 일을 물어봤고 나는 A가 하라고 했던 일을 그대로 했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A가 지시한 업무 방식이 너무나 허술하고 그저 시간 낭비만 하는 지시였다며 그걸 이상하다 생각하거나 어떠한 질문조차 하지 않고 따랐던 나에게도 화가 나 있으셨다. 솔직히 어제 지시를 받을 때 이렇게 해도 되나 약간의 의구심은 있었지만 A가 시킨 일이 꽤나 명확했기 때문에 이내 곧바로 의구심을 지우고 지시를 따라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꾸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만  따랐기 때문에 잘못된 업무방식으로 인해 시간낭비 돈 낭비 인력낭비가 된 것이다.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것을 지적하고 자유롭게 개인의 의견을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원한다며 사장님은 내게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이 다 맞았기에  뭐라 변명을 하거나 대꾸할 필요 없이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알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끝나고 나서도 하루 종일 사장님이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생각해야 한다는 그 말을 들은 것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도 매우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기계 안에 내가 바닥에 놓고 발로 눌러서 스위치를 조절하는 스텝바를 넣어서 사장님이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기계와 스텝 바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전선을 기계 몸체에서 분리하면 왠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여 스텝바를  기계 안에 넣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텝 바가 그리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실수였고 기계 안이 그렇게까지 깨끗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그때가 처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소리를 들은 사건이었고 그 후로 오늘이 두 번째다. 나쁘게 해석하면 머리를 쓰라는 이야기인데, 나는 머리를 쓰는 것이 사실 부담스럽다. 시키는 일을 하고 잘 따르기만 하면 되는 사회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내게 창의성과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오늘, 한 소리를 들어서 찝찝한 게 아니라 앞으로 또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구심이 생겨 매우 찝찝했던 것이다. 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중대사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나 압박으로 다가온다. 앞으로는 정말 덜렁거리지 않고 신중하고 섬세하게 행동할 것이다. 또한 오늘 일로 하여금 지시받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명확해 보이는 일에도 다시 한번 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질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행복하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꼴좋다.

 자중하자. 신중하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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