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노 Jan 09. 2022

비 내리는 날 마르게리따

제주 애월읍 유수암리 '홈즈'


촉촉하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시외로 나가고 싶고, 배도 고프고, 비가 오니 날씨에 어울리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얇은 도우에 심플하게 토마토소스와 물소 치즈, 그리고 바질이 올라간 마르게리따.

담백한 도우 가장자리는 쫄깃하고 토마토소스가 있는 도우 부분은 손으로 들어 올리면 힘없이 축 쳐지지만 입에 넣는 순간 도우 바닥면에서 올라오는 불의 향기에 코가 들뜨는 그런 화덕 피자가 먹고 싶었다.



제주 시내에서 차를 몰고 30분 정도 평화로를 달리다 유수암으로 빠지면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마을이 나온다. 거기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올 것 같은 좁은 돌담길을 달려 들어가면 장작을 가득 쌓아놓은 홈즈의 모습이 보인다.

예쁜 녹색 우산을 툭툭 물기를 털어내고 이제는 익숙하게 QR코드를 찍는다. 제주도에서는 제주 안심 코드 앱을 받아놓으면 편하다. 서울에 가면 손목 털기를 하는 게 영 익숙지 않다.



홈즈는 하얀 도화지 같은 레스토랑이다. 음식이 주인공이라 나머지를 백지로 비워놓은 것 같달까. 부산스러운 주방의 움직임도 최소한으로 오픈해 그저 그 안의 모습을 짐작하게만 한다. 다행히 화덕은 주방 바깥, 그러니까 홀에 가까이 위치해 있어서 원한다면 본인이 주문한 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다.



홈즈의 한쪽 벽면에는 거대한 스피커가 위치해 있다. 홈즈의 전신인 어쿠스틱 홈즈 때부터 가게를 지켜온 녀석이라고 한다. 묵직한 스피커가 주는 이미지처럼 홈즈의 음악 선정도 튀지 않는다. 듣기 좋고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딱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기에 좋은 소리다. 창문에 튀는 빗소리에도 잘 어울린다.



주문 후에는 바로 피자 만들기에 들어간다. 숙련된 셰프가 숙성된 도우를 둥근 원 모양으로 펴, 소스를 바르고 토핑을 올린다. 재료가 심플할수록 재료 본연의 맛이 더 중요하다.



불타는 용암처럼 붉은 토마토소스 위로 하얗고 몽글몽글한 치즈가 녹아있다. 녹색의 바질 잎은 포인트처럼 피자를 장식하고 있다. 보드랍고 쫄깃한 도우 위에 올라간 이 단순한 조합을 볼 때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토마토소스, 치즈, 도우 그리고 화덕에서 피자를 구워낸 셰프의 센스 이 모든 게 없다면 이 피자는 그저 뜨거운 불에 들어갔다 나온 빵과 치즈와 소스의 조합 정도일 테니까.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집어 입에 집어넣는다.

피자는 모름지기 손으로 먹어야 한다. 그래야 까끌거리는 도우의 촉감과 방금 갓 나온 따끈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약간 뜨거울 정도의 소스와 치즈가 살캉한 도우와 함께 씹히고, 나무 장작의 향이 코 끝을 스치면, 빗소리와 함께 만족스러운 오늘의 점심이 시작된다.


이제 피자가 식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입에 넣는 일만 남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