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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스 Aug 20. 2021

포스트모더니스트가 논스에 들어온 이유

석중이의 논스 입주 지원서

논스 혼자 보기 아까운 논스 지원서, 여기에 공유합니다.

1번 타자는 작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개발자인 석중이 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문학을 공부합니다. 소설, 시에 대한 비평을 쓰고 때때로는 창작도 합니다. 


모든 소설은 하나의 아이러니로 향하는 거대한 서사 구조물입니다. 치밀하게 설계된 캐릭터, 그들이 서로 부딪혔을때 일으키는 계산된 화학반응, 정밀한 플롯의 긴장감 설정. 작가는 작가정신을 발휘하여 하나의 예술 작품을 독자에게 던지고, 그 계산된 세계에서 독자는 무한한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비평으로써 그런 서사 구조물에서 카타르시스를 도출하기를 좋아합니다. 카타르시스는 슬프지만 정화적인 쾌락입니다. 어딘가 해결할 수 없어 찜찜한 아이러니를 곱씹다 보면 하나의 도덕적 잣대로 “교훈”을 억지로 끌어내려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나름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이지도, 단순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합니다. 아이러니를 해결할 수 없는 아이러니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아!”, 우리는 인간이 가진 감수성과 공감력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카타르시스이고 저는 카타르시스를 사랑합니다. 그것으로 우린 어머니의 가슴 찢어지는 눈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살인범의 심리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합리적인 인간성 그 위의 어떠한 미지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각박한 이성이 지배하는 듯한 이 세계에서도 모든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공감의 씨앗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누군가가 모두의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학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거대한 작가정신, 완전무결한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미약한 한명 한명의 사람들은 그 체계에 순종할 뿐,  그 이상의 주체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 거대한 체계에 반항합니다. 남성주의, 백인 우월주의, 제국주의, 심지어는 자본주의, 모든 기성 체계에 의문을 던지고 그러한 거대한 거대 바위들에 (감히!) 계란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시를 읽어보면 정말 아무 말이나 적혀있는 듯 합니다. Charles Bernstein의 AZOOT D’PUUND라는 시가 대표적입니다. “fahbeh aht si gidrid. impOg”. 시의 한 구절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아무말 대잔치입니다. 이런 시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지 비평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숨겨진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 시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법 구조를 파괴하고 어떻게든 의미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그 과정을 무의미화 합니다. “시니까 무슨 의미라도 있겠지. 어쨌든 대단한 시인이잖아?” 라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시인의 작가적 이성의 권위에 굴복시키고 스스로의 주체성을 가두는 일입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는 현대사회에서도 필요할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모든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사회의 작가들, 즉 거대한 은행들, IT기업들, 비대적인 당들, 포퓰리즘적 정치인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포스트모더니스트가 그랬듯, 그들의 논리와 이성을 지금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방향으로 쇄신해야 합니다. 모두가 주체일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소수의 이기심이 다수를 억누르는 시스템의 체질 자체를 바꿔야합니다. 


이렇듯, 비평가는 어느 정도 반항적인 기질을 필요로 하는 듯합니다. 누군가 듣기에는 터무늬 없는 이상을 품고 있는 탓에 제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맞는 말이네. 그렇지만 어떻게 바꿀건데?” 이 질문은 항상 뼈아픈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를 인문학자의 한계로 정의합니다. 비평계에는 “비평의 위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책 몇 백 권에 걸쳐 떠들어대면 뭐하나, 아무도 읽지 않는걸... 대강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술이 현대사회의 비평으로서 기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물질적이므로 가장 강력합니다. 물질적 밑바닥부터 우리 사회의 정신적 관습과 문화를 쇄신할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인 힘이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결합된 윤리적인 기술은 자본주의 사회의 체질을 정말로, 건전하게 바꿀 수 있을거라는 야망을 저는 품고 있습니다.


석중이가 살고 있는 사피엔스! 푸르른 앞마당!



논스에서 어떤 걸 기대하시나요?


1번에서 적었듯이, 저는 기술이 성취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야망이 있습니다. 여러 기술이 있지만,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IT기술이라 생각합니다. 제 관심사는 웹 서비스와 블록체인을 제 손으로 직접 구현하는 것입니다.  


Nudge라는 개념에 큰 흥미가 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Nudge란, 인간이 A와 B중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서 매우 깊은 심리적인 기재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으로 하여금 A를 고르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 때문에 거대 IT기업들은 엄청난 규모의 UX리서치 팀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다소 무지갯빛 이상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러한 심리적 기재를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 없이 마냥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헬스케어 비즈니스의 경우, 비즈니스 로직이 윤리적이냐 그렇지 못하냐는 인간 존엄성과 곧바로 맞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윤리적인 UX가 무엇일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논스에 있는 여러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님들, 디자이너님들과 함께 이 주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어 개진시켜보고 싶고, 윤리적인 비즈니스가 결국에 가서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클 수 있는지 가능성을 한번 논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물론 블록체인, 그 중에서도 DeFi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큽니다. 현대 사회에서 금융과 경제정책만큼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금융과 관료제만큼 과두적인 제도가 또 있을까요? 엘리트적인 금융제도를 평등하고,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탈중앙화된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 블록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와 싸워 평등을 이루어내는 포스트모더니스트 엔지니어, 저는 논스에서 활동하는 모든 블록체인 엔지니어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블록체인에 관련하여 최고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논스에서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기술적인 조언을 들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매우 설렙니다! 


위와같은 구체적인 고민과 노력을 통해 결론적으로는 개발자로서의 성장을 논스에서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이런 욕구는 너무 강해서 지난 1년 좀 넘는 군대에서의 시간들은 8시간 초소근무를 서고 돌아와 아이돌을 제쳐두고 사지방에서 혼자 코딩하는.. 조금 처량해서 짠 맛이 곁들어진 나날들이었습니다. 저에게 개발이란, 그만큼 삶의 의미입니다. 일이라기 보단 그냥 삶의 일부로써, 개발할 때 살아있고 살아있을 때 개발하는 느낌으로 살아왔습니다. 기술에 대해 포괄적인 시야를 가지고 건전한 기술적 의견을 낼 수 있는 개발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시 사람들입니다. 저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어둑어둑해질 때 쯤 LP가게로 구경가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발사믹 소스를 뿌린 샐러드와 치아바타를 굉장히 좋아하고요, 비오는 날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창밖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은 절대 자주 오지 않는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더욱이 그런 사람들이 명확한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면요. 논스에 입주하게 된다면 평생에 걸쳐 큰 자산이 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회를 놓치기 싫습니다. 




논스라는 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해주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문학인인 만큼, 저널리즘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한때는 기자를 꿈꾸기도 했구요. 기자라는 직업은 어느 자리에서든 중심에 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은 아닙니다. 그저 옆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받아 적고, 혼자 고민합니다. 그렇지만 그 문화 속에서 직접 발로 뛰어 돌아다니며 결국에는 아주 현실적이고 예리한 통찰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논스에 만약 입주하게 된다면, 저는 딱 그런 위치에 서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엄청난 통찰을 해내겠다는 자만은 아닙니다. 물흐르듯이 공동체로 녹아들어가 마음껏 문화를 체험하고, 즐기고, 말하고, 듣고. 앞장서서 이리 저리 이끌기 보다는 옆에서 관찰하고 음미하다 결국에는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많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깨달음을, 또 성장한 경험을 공동체와 나눌 수 있다면 그게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동체에는 커다란 비전을 제시하고 강렬한 리더십으로 끌어가는 리더도 있어야하지만, 그저 스펀지처럼 흡수해버리는 사람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구요. 


기술과 인문의 그 교집합 어딘가, 저는 특이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논스에 입주해있는 동안 기술 분야에서 경험을 더 탄탄히 한다면 아무래도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시각을 논스에서 나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색다른 관점으로 논스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논스에서의 문화와 삶, 그리고 그 철학에 익숙해질 날에는 독립출판물에 논스의 이야기를 멋지게 담아내고 싶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꾸준히 글도 쓰다 보면 멋진 르포르타주를 한 편 쓸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석중이에 대해 더 알고싶다면?

IG @seokjoong-yoon / @ysjl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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