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를 주는 커뮤니티
이곳에서는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핀란드 이민국의 슬로건이다. ‘핀란드는 당신이 실패해도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음껏 도전하고 깨져도 낙오자나 실패자로 낙인찍지 않는 곳이라니. 그런 나라가 있다면 당장 가서 살고 싶다. 스무 살의 나에게도 두 번째 기회가 절실했었으니까.
2008년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빠의 사업이 크게 고꾸라졌다. 사업을 하기 전 아빠는 당시 인기 게임을 운영하던 프로그래머였는데, 어디서부터 꼬였던 걸까. 집안 전체가 빚을 져야 했고 우리 식구는 살던 집을 내놓고 점점 더 좁은 곳으로 내몰렸다. 월세는 싸고 주변 환경이 나쁜 곳으로. 빚을 내서라도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 다른 가정들과 정확히 반대 상황에 놓인 거다.
아빠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느라 연락이 잘 닿지 않았고, 엄마는 집에서 우는 날들이 늘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걸까.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거다.
숨만 쉬어도 월세는 내야 하니 가정 형편이 나빠져만 갔다. 맞벌이 가정이었던 우리집은 온전히 엄마의 수입과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아빠처럼 멋진 IT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도 접어야 했다. 꿈을 꾸기는커녕 의식주조차 최소화하면서 살았으니까.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그런데 아무리 작은 집으로 이사해도 월세에 허덕이는 건 변하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가 숨을 조여오는 고통이라는 걸, 스무 살에 처음 느꼈다.
단 한 번 실패한 것뿐인데, 빠져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렸던 그때 우리 가족이 찾은 대안은 공공임대주택이었다.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월세로 살 수 있는 곳. 빈말로라도 넓고 쾌적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울지 않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걸로 충분했다.
집안의 소득과 자산이 턱없이 낮았기에, 공공임대주택 선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물론 1차 선발 이후에 진행되는 추첨에도 당첨되어야 한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당시의 나에겐 공공임대주택 선발 소식이 누군가의 아파트 청약의 행운보다 더 값진 기쁨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두 번째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번에도 나의 노력에 의한 결과는 아니었다. 아빠의 사업 실패가 내 탓이 아니었던 것처럼. 불행과 행운은 본질적으로 같다.
나와 내 가족들의 삶을 운이 결정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운이 안 좋아도 두 번째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이 ‘실패해도 다음이 있는 곳’이라 믿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멋진 꿈이지만, 동시에 스무 살이 현실로 만들기엔 너무 거창한 꿈이다. 정치를 해야 하나?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막막한 마음에 ‘우선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 경험 쌓은 뒤에 도전하는 게 낫겠지?’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가장 발달한 IT사업을 경험하기 위해 공유 차량 앱 ‘타다’를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타다에서 운영기획 팀원으로 했던 일은 기사분들과 관련된 내부 정책 수립이었다. 정치가가 되기 전에, 정책을 만드는 일을 고른 거다. 일하면서 지켜보니 타다 드라이버는 택시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타다와 일하는 프리랜서였다. 회사에는 파견직 직원들이 더러 있었고, 우리 팀에도 비정규직이 있었다. 위치에 따라 입장은 달랐지만, 이 일이 아니면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그래도 평소엔 큰 문제가 없었다. 같은 팀에 있는 비정규직 직원과 함께 밥 먹고 일하고, 회사생활이 힘들다며 소소한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취약하다는 건 이런 뜻이다. 문제가 없을 때에는 다른 사람과 비슷한 높이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아래로 떨어지는 첫 번째 사람이 된다는 것. 일명 ‘타다금지법’이 시행되자 회사에서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은 비정규직과 계약직이었다. 개인 사업자로 일하던 기사분들 역시 고객과 신뢰를 쌓으며 일하던 곳을 잃었다.
이들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경험에 비추어보면, 한 번 수렁에 빠졌을 때 다시 올라오기란 지독히도 어렵다. 만약 스무 살 무렵 우리 집이 운 좋게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취약하다는 건, 한번 떨어지고 나면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도 다시 올라오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반대 사례를 제시하는 커뮤니티가 있었다.
2017년 여름, ‘논스(nonce)’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논스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인 코리빙, 코워킹 커뮤니티인데 뭔가 독특했다. 분명 어렵고 복잡한 기술을 다루는 곳인데, 막상 살아보면 기술보다 더 뜨거운 뭔가가 있었다.
논스에서는 실패해도 괜찮다. 당신의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벌어질 일은 이를테면 이런 거다. 우울함에 빠진 당신에게 의준이 다가와 농담을 건네며 웃게 해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으면 영세는 조용히 당신의 말을 들어준다. 유빈은 당신이 관심 있어 할 법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민지는 당신과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선배를 멘토로 소개해준다. '주변 사람들 모두 내가 잘되길 바라고 있다'는 감각을 늘 느끼면서 사는 거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든 이들은 당신과 매일 함께 밥 먹고 운동하며 당연하다는 듯 서로를 돌본다.
이런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내 안에 있던 막연한 두려움도 점점 옅어졌다. 실패라는 단어는 나에게 알레르기와도 같아서 가까이하면 안 되는 무언가였다.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지도 모르는. 그런데 논스에서는 실패가 대수롭지 않다. 두 번째 기회는 물론이고, 세 번째, 네 번째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짐 덩어리가 알고 보니 내가 붙들고 있던 돌 덩어리라는 걸 알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논스는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지금 당장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어?
물론이다. 과거의 나처럼 월세에 쪼들리는 젊은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 젊다 못해 어린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도록 경제적 어려움을 줄이는 것. 공공임대주택 늘리기를 시작으로, 집 때문에 미래가 막막한 2030을 대변할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니 마음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그동안 꿈을 미뤄왔던 시간은 길었지만, 꿈을 미룰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짧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성남 시장에 출마하는 무모한 도전을 한다.
당신은 꿈에 도전하기 위해 나처럼 빙빙 돌아가지 말기를 바란다. 안전한 곳에서, 도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당장 도전하길 권한다. 최악의 경우라도 함께 하는 사람이 남고, 따뜻한 손길과 즐거운 시간이 남을 테니까. 블록체인에 대해 잘 아느냐 모르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만약 나 혼자만 잘 사는 게 정답이라면, 어느 도시에 살든 전혀 상관 없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가족과 친구, 동료를 모두 남겨두고 혼자만 다른 곳에서 평생 살라고 한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도 드물 것이다. 결국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최고의 조건은 내 주변 사람이 잘 살고, 그 사람들의 주변 사람도 잘 사는 사회다. 뜬구름잡는 명언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경험에 근거한 확신이다. 논스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느끼고 있는 따뜻한 감정에는 분명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깃들어 있다.
논스는 당신의 두려움이 과대평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하는 커뮤니티다. 인생의 방향을 영원히 바꾸는 일에 겁내고 싶지 않다면,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자. 정말 괜찮은 곳인지 알아보는 일이야말로 실패해도 손해보지 않는 선택이니까. 함께할 용기가 있다면, 논스는 항상 여기에 있다.
새로운 꿈에 도전할 미래 혁명가를 기다리며,
이대호 드림
* 이 글은 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