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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스 Apr 06. 2023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자, 노력만큼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직하려고 퇴사한 거 아니었잖아.
원래 하고 싶었던 걸 해봐


2019년,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어느 회사에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완섭이가 해준 말이다. ‘퇴사한 이유가 연봉이나 직장 상사, 조직 문화 같은 조건들이 아닌데 뭐 하러 또 다른 회사에 들어가려고 열심인 건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어서, 이직이라는 선택지를 깨끗하게 접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퇴사했고, 그 의미에 딱 맞는 회사는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서 같은 해에 회사를 설립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갈 길이 멀지만, 커뮤니티 위임량이 1조 원 이상으로 성장했으니 여태까지는 성공적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지만.


퇴사하기 1년 전, 딱 하나만 빼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직장의 안락함이 좋고 일도 나쁘지 않은데 정작 중요한 게 빠진 기분. 개발자로서 내가 정의한 일의 의미는 내가 만든 제품이 누군가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직접 만든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보람을 느꼈다. 직장인으로서 이 정도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제품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전 세계 어딜 가도 갤럭시를 쓰는 사람을 볼 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인터넷에 내가 코딩한 파일을 검색하면 단 1건 밖에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질문이 피어올랐다. 


회사에서 정말 성장하고 있던 거 맞아?


성장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새로운 기술을 발견했는데, 인터넷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이 기술은 스마트폰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하위 60억 명을 위한 금융 기술’이다. 통장이 없는 사람, 제도권 금융 서비스에서 배제된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의미라고. 


‘이거다!’ 싶은 마음과 ‘진짜야?’ 싶은 마음이 함께 들었다. 그럼 확인해봐야지. 우선 블록체인이라는 게 기술적으로 말이 되는 건지부터. 이더리움 소스 코드를 하나씩 전부 열어서 뜯어보고 주석까지 번역해가며 여기에 매달렸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매일같이. 아내와 아이를 향한 미안함을 안은 채로. 그렇게 수 개월이 지나고서야 결론을내릴 수 있었다. 이더리움은 그럴듯한 코드를 지녔다.


깃허브에 업로드한 '이더리움 주석 번역 프로젝트'


게다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등장한 지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기존 업계는 선진국들이 오래전부터 핵심 기술을 꽉 쥐고 있어서 들어갈 틈이 없지만 블록체인은 이제 막 등장해 새로운 판을 만들어 가는 단계다. 다 같이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게임이라면, 해볼 만하다. 개발자로서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다.


물론 이 기술이 실제로 금융에 사용될 수 있느냐는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다. 그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블록체인 기술이 실제로 사업에 적용되고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한다는 증거를 직접 봐야 믿을 수 있으니까. 국내 자료를 뒤적이다가, ‘이더리움 연구회’에서 주최하는 발표회에 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그곳엔 블록체인 기술의 진지하게 고민하는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 하라’는 조언의 주인공 완섭이를 만난 곳도 이더리움 연구회였다. 그리고 마침 그 행사가 열린 공간이 블록체인 커뮤니티 ‘논스(nonce)’였다. 블록체인이 하위 60억 명을 위한 기술이라고 주장하던 그 남자가 만든 곳. 


닫힌 성장판을 열어주는 커뮤니티


완섭이는 논스에 오면 블록체인에 미쳐서 퇴사한 사람, 새로운 프로젝트를 벌이는 사람과 아예 같이 지낼 수 있다며 나에게 추천했다. 블록체인이 실제로 쓰이게 할 방법을 하루종일 고민하고 실제로 구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고. 그러니까 성급하게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대신 여기서 세 달만 있어보라고. 3개월 동안 차분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돌아보고 실험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퇴사한 다음 처음 선택한 곳이 논스 코워킹 스페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직접 겪어보니 논스 멤버들은 직장에서 본 사람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이상하게 해맑은 논스의 코워킹 스페이스. 모자 쓴 친구가 문제의 완섭이다


모르고 지나치기엔 너무 눈에 띄는 차이였다.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으니까. 이상하다. ‘왜 다들 저렇게 웃고 다니지?’ 하루종일 노는 사람들이 아니다. 계속 뭔가 공부하고, 토론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밤을 새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저렇게 일했다면 다들 좀비처럼 힘없이 어슬렁거릴텐데, 저들은 뭐가 좋아서 웃고 있는 건지. 


사람들이 늘 웃고 다니는 곳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논스에는 코인에 투자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블록체인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험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니까 크립토 시장이 좋든 안 좋든 이들은 즐거운 거다. 아직 블록체인 산업이 자리가 잡히지 않은 것도, 일주일만 지나도 트렌드가 바뀌고 새로운 기술이 업계를 휩쓰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업계에 오래 남는 사람들은 결국 이런 사람들이다. 오히려 블록체인 기술이 곧 엄청난 성과를 보여줄 거라며 확신에 차서 들어온 사람들은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다른 길을 찾는다.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번듯한 회사에서 스카웃 제안을 받을 때 흔들린다.



나도 이 기술이 지닌 잠재력에 미쳐서, 블록체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들과 앞으로 10년 동안 변하지 않을 문제를 풀자고 했다. 업계는 앞으로도 계속 빠르게 변하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블록체인 산업이 안정화될 때까지 바뀌지 않을 문제라고. 그게 ‘결제 인프라’다. 결제는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기에 가장 알맞은 분야이자, 60억 명의 삶을 바꿀 분야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아무리 가난해도, 전 세계 어디에 있어도 금융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윤택해질 것이다.



물론 ‘결제 인프라’는 크고 원대한 목표라서 한 걸음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하나씩 출시하고 있다. 가령 하나의 플랫폼에서 여러 블록체인 지갑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지갑 앱(웰던 월렛)이라거나, 디앱(Dapps,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위해 노드를 유지해주는 서비스(올댓노드) 같은 것들이다. 모두 10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한 블록들이다. 


10년을 기준으로 보면 DSRV는 아직 40점짜리 회사다. 창업하고 만 4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계속 성장할 일만 남았다. 아무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의미를 좇는 사람들과 함께.


논스는 당신에게 다시 성장할 기회를 주는 커뮤니티다. 당장 J 커브를 그릴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다 만들어놓은 판에 제한적인 보태기만 하는 식의 성장은 아닐 거라 확신한다. 이 방은 당신이 문을 여는 만큼 열릴 것이다. 성장하고 싶은 만큼 성장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DSRV labs CEO

김지윤 드림




* 이 글은 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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