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 보는 거죠.
뭘 하든 평균 이상은 할 테니까.
2017년, 취업 준비할 때 마음가짐이 딱 저랬다. 전공이 미디어영상학부인데 한국담배인삼공사에도, 올리브영에도 지원했다. 무슨 뜬금없는 구직이냐 싶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전공에 맞춰 시장은 작고 경쟁은 치열한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세계 최대 규모의 이더리움 행사인 ETH Denver에서 연사로 나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일단 시작해보자는 선택이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모르는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이는 게 순탄할 리가 없다. 채용공고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라는 곳을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블록체인이 뭐 하는 기술인지 전혀 몰랐지만 일단 지원했다.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번역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입사해 보니 곧바로 기사를 쓰도록 시키는 게 아닌가. 블록체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아, 하나 있다. 예전에 도지코인이 웃겨서 조금 샀던 거? 그런데 기사 쓰면서 배우라니. 이게 첫 직장이라니.
많이 이상했지만 일단은 계속 다녔다. 같은 회사 선배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내 인생은 전공과 한참 멀어졌고, 지금껏 지원한 회사들과도 아득히 멀어졌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 중에 ‘코스모스(Cosmos)’라는 게 있는데, 이게 여러 블록체인들을 연결하는 인프라가 될 거란다.
지금은 수많은 코인들이 각자 최고라고 주장하지만, 앞으로 블록체인 생태계가 커지면 그 안에서 각각의 블록체인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하게 될 테고 그러면 이들을 연결하는 프로토콜이 필요해진다고.
그래서 코스모스의 슬로건은 ‘블록체인의 인터넷’이다. 세상에 인터넷이 없고 수많은 정보들이 모두 섬처럼 따로 떨어져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마치 어떤 사람이나 물건도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세계와도 같을 것이다. 그런 세계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서로 소통하고 연결될 때 가치를 키우는 존재니까.
이렇게 코스모스가 내건 가치는 당시 우후죽순 튀어나온 코인들보다 훨씬 멋지고 매력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이기도 했다. 기술적인 기반이 탄탄했고, 블록체인 판에 새로운 유행이 나타나도 휩쓸리지 않았다. 하나만 잘 하기도 어렵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코스모스 생태계를 지켜보다가 점점 깊이 빠져드는 바람에 1년 후에는 텐더민트(Tendermint) 팀에 합류했다. 텐더민트는 코스모스가 인프라로써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운영진이다. 물론 코스모스는 탈중앙화되어 작동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운영진이라는 표현보다는 핵심 기여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텐더민트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보다, 텐더민트라는 조직의 특수성이었다. 그 특수성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내 인생은 또 한 번 급커브를 그렸기 때문이다.
텐더민트에서 일하기 시작하자마자 밤낮이 바뀐 생활도 시작되었다. 밤에 일하는 게 좋아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시차였다. 탈중앙화 조직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일하다보니 회의는 온통 새벽에 잡혔고, 일이 끝나면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이렇게 택시비를 펑펑 쓰느니 당시만 해도 코워킹 스페이스로 출퇴근하던 '논스(nonce)'의 코리빙 하우스에서 아예 살아보기로 했다.
논스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유튜브를 먼저 시작한 걸로 유명했던 하시은 형이 1,000일 동안 매일 유튜브 영상을 올리겠다고 선언한 거다. 속으로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보니 그걸 실제로 해내고 있는 거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다.
무모한 도전에는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거의 3년간 매일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한다고 선언한 것부터 비범한데, 실제로 해내는 과정이 흥미를 끌었다. 직접 살아보니 논스에는 온통 이런 사람들 천지였다.
블록체인으로 기존의 비즈니스에서 하지 못했던 혁신을 이루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똑똑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있을까 싶을 정도로. 엘리트 정규 코스를 밟은 친구와, 반항아 기질이 강한 천재가 같이 노는 판이었다.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가 ‘에버렛(EverLett)’이었다. 스테이킹된 자산을 유동화하는, 이른바 '리퀴드 스테이킹'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거다. 2022년 기준 시장 규모가 10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분야에 도전한 셈이다. 당시에는 리퀴드 스테이킹에 대한 인식이 낮았지만, 똑똑하고 열정적인 친구들은 먼저 알았던 거다. 이 시장이 클 수 밖에 없다는 걸. 사이드 프로젝트로 함께한 나 역시 이렇게 똑똑한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이 즐거워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쓰며 몰입했다. 문제는 이 예측을 너무 빨리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때는 2020년이었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아이템이 좋다고 사업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이런 흔한 교훈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다. 진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남은 건 믿을 만한 사업 파트너, 정환님이다.
정환님은 프로젝트를 이렇게 끝내긴 아쉽다며 어정쩡하게 시작했던 블록체인 지갑을 계속하자고 했다. 여러 코인을 담는 지갑을 시작으로 코스모스 생태계는 물론 다양한 블록체인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만들자고. 나는 정환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또 다시 무모한 도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게 없으면서 블록체인 미디어에 지원했던 때처럼. 매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겠다고 선언한 시은이 형처럼. 그리고 강한 비전을 가지고 에버렛 프로젝트를 시작한 논스 입주민들처럼.
논스에서 체인앱시스에 합류한 한해님은 이전까지만 해도 블록체인 관련 경력이 없었다. 더구나 데브옵스(DevOps, 개발에서 출시, 운영 전 과정을 아울러 신속하게 제품이 출시되도록 만드는 방식 또는 그러한 문화)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사내에서 관련 경력이 가장 오래됐다. 짧은 기간 안에 빠르게 성장해서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어, 3~4명이서 할 법한 일을 혼자서 해낼 정도다. 무모한 도전의 결과다.
이렇게 무모한 도전들이 모여 세상에 출시된 인터체인 지갑 ‘케플러(Keplr)’는 지금 80만 명이 넘는 고객에게 사용되고 있다. 이후 출시된 탈중앙 거래소 ‘오스모시스(Osmosis)’는 일 평균 600억 원에 달하는 거래량을 지속하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의 매력은 무주공산에서 뭔가 해볼 수 있고 그게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크고 오래된 업계일수록 인맥과 평판의 영역이 커진다. 하지만 시장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면 그냥 내가 만드는 제품 자체가 업계의 주목을 받고 나를 설명하는 레퍼런스가 된다. 여전히 무모한 도전이 통하는 영역이 여기다.
그렇다면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심지어 누구보다 똑똑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과 일해 볼 기회가 넘쳐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당신의 경력이 얼마나 화려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느냐이다. 이 말에 가슴이 설렌다면, 망설이지 말고 논스에 지원해보라. 아마 3년 뒤에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때 논스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라고.
체인앱시스 CEO
이예훈 드림
* 이 글은 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