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논숙자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스 Apr 27. 2023

AI 스타트업과 쿠팡을 박차고 들어간 커뮤니티

2018년, 스물여덟이던 당시 AI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때만 해도 나는 개발자라는 직무에 매몰되어 있었다. ‘개발 능력을 키우면 커리어가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 생각은 고객들을 만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AI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AI 기술을 활용하길 원하는 기업 고객들을 여럿 접했다. 얘기를 나눠 보면, 이들이 원하는 건 최신의 AI 기술이 아니라 ‘고객 분석’이었다. AI는 고객 분석을 위한 도구일 뿐이고. 예를 들어 화장품 제조사는 스마트스토어에 올라온 수천, 수만 개의 고객 리뷰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길 원했다. 화장품의 촉감, 트러블 여부, 발림성 등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고객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어떤 기술이냐’가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였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실제로 더 재미있기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운 개발 언어를 공부하는 것보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사용해 고객 리뷰를 분석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성분이 순해서 좋은데 발랐을 때 약간 끈적거려요”와 같은 리뷰가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공통적인 의견임을 알게 된 순간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내가 가진 기술로 수많은 고객들의 목소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제품의 장점과 개선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러한 데이터들이 모여 더 좋은 제품을 기획하는 발판이 된다. 후속 제품에 리뷰가 쌓이면 더 정교하게 분석해서 제품을 업그레이드한다. 이보다 재미있는 선순환이 또 있을까. 심지어 고객이 많아서 그 영향력도 크다면?


자연스럽게 고객이 아주 많은 회사로 눈길이 갔다. 실제 고객의 목소리를 아주 많이 들을 수 있는 곳이 좋겠다. 2021년, 쿠팡으로 이직한 이유다. 


쿠팡은 내가 가진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하기에 적합한 조직이었다. 수많은 고객의 피드백이 남아 있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매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이터를 보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찾도록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일을 맡아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업무 자체에서 오는 보람도 컸고 경제적 보상도 얻으며 일했다. 누구나 아는 기업에서, 적지 않은 경제적 보상과, 성장하는 감각까지. 대부분의 경우 이보다 좋은 일자리도 드물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게 내 경우는 아니었지만.


스타트업에서 고객 데이터를 직접 분석할 때와는 달리, 쿠팡에서는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는 팀이 별도로 존재했다. 그래서 내가 마주한 건 고객의 목소리 그 자체라기보다 이미 분석과 정리가 완료된 결과물로서의 숫자들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지나치게 명료했다. 그래서 내 일이 ‘고객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무미건조한 KPI 달성’인 것처럼 느껴졌다. 창의적인 도전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니 재미가 떨어졌다.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점도 도전의 불씨를 꺼트렸다. 경제적 보상이나 복지 등 이런저런 조건이 좋으면 안주하기 쉽다. 스타트업에 비해 경제적 안정성이나 취미 생활, 가족과의 시간 등을 일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동료들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화 주제도 골프, 가족, 부동산 같은 것들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으니 내가 인생 설계를 잘못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일을 삶의 우선순위에 놓으면 안 되는 걸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다. 더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손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그래서 ‘창업가들의 마을’이라 불리는 논스(nonce)에 덜컥 살아보기로 했다. 



논스를 딱딱하게 설명하면 코리빙하우스 커뮤니티이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하루 종일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공동체에 가깝다. 아침에 눈 뜨면 각자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나서야 잠깐 보는 사이가 아닌 것이다. 각 호점별로 20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있는 데다가,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리모트 워크로 일하는 멤버들이 많기 때문에 며칠만 지내도 서로를 친숙하게 여기게 되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다. 



평일 오후의 논스 멤버들은 각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거나, 줌 미팅을 하고, 새로운 자료를 연구하고 있다. 점심과 저녁 시간에는 함께 요리를 하고, 탁구를 치기도 한다. 원한다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멤버들과 보낼 수도 있다. 가족과 직장동료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공간인 셈이다. 영향을 받을 거라면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논스 멤버들을 한 명씩 떠올려서 공통점을 추려보면,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나이도, 배경도 제각각이지만 그런 성향만큼은 공통적이다. 남들의 기준에 따를 필요가 없다고 믿고 실제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들겠다며 탈중앙 커뮤니티를 만든다거나, 논스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블록체인 경력이 전혀 없던 친구가 이더리움 해커톤에 참가해 대상을 거머쥐기도 한다. 기존에 없던 거래소를 만들겠다며 열심히 개발하는 친구도 있다. 어딜 가도 아직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그래서 논스에서는 ‘나만 너무 열심히 일하나?’와 같은 생각을 할 일이 없다. 오히려 내 꿈이 너무 작았던 건 아닌지, 시장을 너무 몰랐던 건 아닌지 반성하며 꿈을 키우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만약 지금 주변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논스에 세 달만 살아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가령 나와 같은 개발자라면 맡은 일만 잘하는 것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주목받는 제품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개발자 친화적인 커뮤니티이기도 하니까. 


논스 입주를 결정하는 건, 당신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도전하는 사람, 성장에 몰두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산다면 당신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겨우 몇 달 만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거기에 걸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간은 의지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변하니까.



박진석 드림




* 이 글은 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