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일기를 오랫동안 써왔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꺼내어 무언가를 끄적였고, 지금도 몰스킨 노트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냥저냥 있었던 일 중 기억하고 싶은 장면, 적어놓고 다시 꺼내보고 싶은 좋은 아이디어, 잊어버리기 전에 써놔야만 할 거 같은 찰나의 생각들, 그리고 희로애락의 크고 작은 감정까지도 일기장에 다 옮겨놓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일기장에 무언가 쓰는 것은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 없이 생활의 일부로 행하는 루틴 중 하나인데, 최근에 일기 쓰기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강렬하게 깨달았으면 일기장에 이렇게 남겨놓았다.
“일기의 책임이 막중해졌다. 왜냐면 나는 00세가 되어서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속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거든. 속마음은 혼자 가지는 것이고, 그것이 어둡고 부정적이고 짜증이나 화가 섞인 것이거든 스스로 감당하고, 밝고 좋은 것이거든 조금은 타인과 나누어도 되나 보더라고.”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내가 대화 중 불평이나 불만, 부정적인 일들에 대해 자주 털어놓는다면 상대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일기장에 써놓고, 또 결심했었다.
“일기장에 털어놓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웬만한 감정도 정리해서, 일기장 외에는 그냥 본연의 나, 그대로의 ‘나’가 아닌 ‘정리된 나’ ‘해소된 나’ ‘정제된 나’로 살아야 하는 거지. 일기장 너 하나가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일기장-너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이야.”
엄청 서러웠나 보다. 그러니까 일기장, 너의 임무가 막중하다니...
그런데,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뇌부자들’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내 감정이나 부정적 의견을 다 털어놓는 것이 그것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공평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상대에 대하여 실망하면서 위와 같이 쓴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이나 생각을,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어디엔가 털어놓고 누군가에게 말함으로써 해소되고 정리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무언가 쓰고, 깊은 생각 없이 끄적일 때가 많아서 미처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머릿속, 가슴속에서 꿈틀대는 것들을 일기장에 쏟아내고 나면, 문자로 옮겨진 사건이나 상황들, 그리고 그 속의 나 자신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 일기는 대부분 두 가지 결말로 끝을 맺는다: 감사 또는 반성.
좋은 일, 기쁜 일에 대해서는 내게 허락된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별로 좋지 않은 일, 내가 기분 나빴거나 화가 났던 일들은, 되짚어보면 거의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다.
나의 감정과 생각들이 일기를 통해 정리되는 과정에서 내가 스스로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지에 대하여 고민하기도 하지만, 책이나 다른 매체들을 통하여 접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촉매로 감사와 반성의 결론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한 매개체는 전문가로서 주는 조언이 될 수도 있고,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담담하게 겪은 일을 풀어놓고 거기서 얻은 지혜나 교훈, 아쉬움이나 성취를 공유하는 ‘이야기’들을 마주할 때 내 속에 울림이 가장 큰 것을 느꼈다.
‘이야기’ 속 한 단어, 한 문장 속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공감하면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위로와 감동을 받기도 했다.
말 그대로 말 한마디에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붙잡고 이야기하면 너무나 부담스럽고 꼰대스럽고 오버스러울 수 있지만, 내가 간간이 털어놓는 이야기의 한 조각을 통해 누군가는 공감을 얻고,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브런치’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