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내 세상

by 푸항


어릴 적에는 몰랐다.

우리 엄마가 내 안전한 울타리였고, 곧 세상이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나는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생일선물로 10만 원짜리 이마트 상품권을 받았다고

같이 사용하러 가자고 해서 갔다.

스킨과 로션만 사고 싶다고 하더니

10만 원은 훌쩍 넘는 아이크림, 에센스 등 엄마가 쓰지 않는 것들이

다 포함되어 구성돼 있는 세트를 고작 하나 추천받고는

바로 사겠다고 한다.


내가 옆에서 말리며 다른 걸 추천해 줬다.


어느 날은, 내가 갑작스레 암진단을 받았다.

엄마가 수술하지 말고 한의원을 가라고 한다..

엄마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속이 상해서 눈물부터 난다.

진단을 받고 나와서는 비 오는데 비를 맞는지 신경도 안 쓰고

전화로 엄마랑 울고불고 싸우며 집에 돌아왔다.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겠지만,

한의원은 비용도 훨씬 비싸고, 효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병원에서는 전이되기 전에 빠르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최근에 엄마가 소송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나에게 승소를 했다며 마지막 비용만 들어가면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픈 너에게 말하기 미안하지만 카드론을 받아줄 수 있냐고 한다.

의심이 갔지만, 삼촌도 이모도 빌려주지 않는다고 다급해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카드론을 3000만 원 받아서 엄마에게 주었다.


금방 돌려줄 거란 이야기에 매달 높은 이자만 나가고 만기일시상환으로 갚아야 하는 걸로.


알고 보니, 엄마는 2년 동안 사기를 당했고 1억이 넘는 금액을 빚을 져서

사기꾼들에게 넘겨준 것이다. 나까지 엮여서 3000만 원까지.


한 달.. 두 달.. 세 달.. 이래저래 해서 사기고,

얼른 신고를 해야 한다고 설득을 계속해왔다.

엄마는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있지도 않은 희망을 놓지 못해서,

경찰서에 가면 얼마나 모욕감을 주는지 아냐면서, 절대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 돈 받아서 너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주겠다는 희망으로

2년을 버텨왔다고 한다.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혼자서도 잘 살았더라면,

내가 못난딸이 아니었더라면 엄마가 그런 없는 희망을

안믿지 않았을까 나는 또 내탓을 한다.


엄마가 멍청해서도, 한심해서도 절대 아니다.

사기꾼들이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조종하는 거니까.

얼마나 스스로를 탓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지 잘 안다.


신고를 해야 사기라는 게 입증이 돼서 개인회생이든 파산이든 할 수 있다고

수십 번, 수백 번 설명을 해도 듣지 않는다.


내 정신이 죽어가면서도 엄마를 놓지 못했다.

내가 꼭 그 말들 속에서 엄마를 구하고 싶었다.

내 세상인 엄마가 혼자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까.



세달 간 겨우 설득을 해서 신고를 했다.

엄마와 증거들을 모으며 엄마의 거래내역을 보고 난 숨이 턱 막혔다.

말도안되는 간격들로 말도안되는 금액들을 빚을 져서

턱턱 입금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기꾼들이 신고를 하면 엄마에겐 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서

불안해 하면서 놓지못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숨이 턱 막힌다.


그 와중에 오빠에게 보내는 돈, 암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야했던

나에게 보냈던 돈, 나나 오빠나 사기꾼이나 다 똑같이 느껴졌다.

그것도 모르고 난.


엄마가 사기를 당한 게 처음은 아니다.

어릴 적, 법원 앞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서 내가 "어떻게 됐어?"라고 했는데

엄마가 "못 잡는대"라고 해서

내가 "무슨 법이 그래? 그럼 사람들 다 사기치고 살지"

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일은 딸인 나까지 엮여서 엄마가 더 힘들걸 알기에

엄마의 마음을 수십 번, 수백 번 헤아렸다.


엄마의 잘못이 아닌데, 세상이 변한 건데...


나도 비록 마냥 사랑받고 자라지는 못한 아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보통 엄마와 딸이 반대이지 않냐고 한다.


우리 엄마는 다정한 엄마는 아니다.

혼자 지내면서 여러 수술을 견뎌왔지만 엄마가 와준 적은 없다.


그 어느 때도 원망한 적 없다.


엄마도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내느라 그랬다고

늘 이해했다. 오히려 도움이 돼주지 못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면

스스로 무너지기를 반복했었다.


올해 엄마 생일날 나는 좋은 직장을 가진 부모, 돈 많은 부모 필요 없으니

다정한 엄마가 돼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었다.


잘 살지도 못할거면서 신경을 못써줘서 미안하다며

지난 세월을 후회하는 엄마다.


나에게 "불쌍하다"의 의미는

"안쓰럽다"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가장 안쓰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속수무책 당하며 늘 고생만 하고

세월을 다 보내버린 우리 엄마가 불쌍하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내가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