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나는 드물게 정치적 포스팅을 했다.
총선까지 밀려 입법권마저 빼앗기면 그야말로 파탄 나겠구나 싶은 절박함에서였다.
몇 달 만에 다시 글을 쓴다.
기득권 카르텔이 똘똘 뭉쳐서
이재명 죽이기에 혈안이 된 지도 3년이 넘어간다.
그들이 대선부터, 대선 패배 이후까지
이재명을 끝끝내 악마화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기득권의 배를 불리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시절
무상교복, 청년배당, 출산지원, 지역화폐로 서민을 살렸고
코로나 때는 전국 최초 재난기본소득으로 위기를 막았다.
아이들 도시락에 과일 하나라도 더 넣고
형편 어려운 집엔 배달까지 했던 건
한 끼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
이쪽저쪽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는 기득권들과 달리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실천해서 세상을 바꿔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의 실현을, 그 세상을 나도 바라기에 나는 그를 지지한다.
2년 반 만에
국가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카테고리가 완벽하게 망가진 나라.
쏟아지는 진술과 녹취로 드러난 국정농단.
그런데 왜 고통을 받는 건 이재명인가?
타깃을 정해 놓고 사냥하는 자들이 지배한 나라.
사실을 조작해 기소한 검찰,
그들과 손잡은 판사가 만들어 낸 대선 출마 불가 징역형.
이는 누가 봐도 도를 넘는 정치 판결이다.
법대로 판결 나는 건 불가능한 시점이다.
검찰독재 하의 사법부다.
과거라면 김대중 대통령처럼
어둠 속 바다로 던져버렸을 그들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20대 초반의 나는 정치에 무지했다.
세상을 통째로 외면했던 것과 다름없다.
자신의 안위와 안온함에만 머무는 것은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정치 몰라요‘, ’정치 얘기하지 마‘라는 말처럼
부끄러운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일상에 정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오늘, 당장 가스비 걱정하는 서민들의 삶도 정치에서 결정된다.)
이제는 정말 ’때‘가 되었다.
’나라 망했네‘라는 말이 더 이상 비유가 아닌 현실이 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관심과 우려를 넘어, 이제는 뭐라도 해야하는 때가 됐다.
침묵하는 순간, 우리 일상부터 무너질 것이다.
< 경희대 시국선언문 >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째 텅 비어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