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데 의의를 둔다

프로 찍먹러의 인생취미 찾는 법

by 농농이네


한 때, 인터넷에서는 탕수육을 어떻게 먹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찍먹이냐, 부먹이냐.

찍먹은 탕수육을 소스에 살짝 찍어 먹는 방식이고, 부먹은 아예 소스를 탕수육 위에 부어 먹는 방식이다.


그런데 찍먹이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무언가에 깊게 몰입하지 않고, 가볍게 맛만 보는 것. 손가락으로 소스를 살짝 찍어 맛보듯, 새로운 일에 발만 담가보는 행동을 뜻한다.

예를 들어 크로스핏을 한 달 다녀보거나, 요가수업을 한두 번 들어보는 일 등의 단발성 시도가 찍먹의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시작하고 끝을 보지 않는 것을 나무라기도 한다. “끈기가 없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 말도 물론 맞다. 익숙해지기 전에 포기해 버리면 제대로 된 경험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찍먹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실패하거나 실망할까 봐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이게 나랑 안 맞으면 어쩌지?”
‘또 중간에 그만두면 나 자신이 한심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내서 찍먹을 해보는 게 답일 수도 있다.

찍먹은 실패가 아니다.

시도이고 탐색이다.


선택지가 수없이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씩 맛보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게 진짜로 맞는 취미를 찾아갈 수도 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소스를 찍어 맛을 보듯, 무언가를 해보며 내 취향과 적성을 알아갈 수 있다.


나 역시 요가는 3년, 수영은 4년 넘게 했었지만, 그전에는 한 달 만에 포기했던 클라이밍, 두세 번 가고 그만뒀던 크로스핏, 그리고 조금 그리다가 만 그림들, 두 달만 다니고 그만뒀던 기타 학원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찍먹의 과정이 없었더라면, 요가나 수영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 적성에 맞는 취미를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릴 적, 내 또래의 아이들은 부모님에 의해서 피아노, 태권도, 미술학원 등을 다녔었다. 아이들의 적성과 취미를 찾아주고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 해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왜 어른이 되니 ‘그만두는 것’이 죄처럼 느껴질까?

그건 성취하지 못하면 패배라는 성취주의적인 시선에서 취미를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게 성취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주보다 시작일지 모른다.

그러니 찍먹도 괜찮다.

맛을 봐야 뭐가 맛있는 지도 알 수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