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효율
한국인은 효율에 진심인 민족이다. 단순히 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힐링을 위해 하는 게임으로 유명한 '동물의 숲'에서조차 한국인들은 최적의 동선을 설계하고 효율적인 자원 채집을 위해 섬 전체를 공장화해버린다. 무인도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라고 만들어 놓은 게임에서도 최소투입, 최대산출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효율에 대한 강박은 여행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한국인들은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도 어떻게든 비용을 마련해 해외로 떠나겠다는 이들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여행의 시작은 위험과 불확실성에 기반할지 몰라도, 한국인들이 여행을 즐기는 방식은 불확실성 회피적이다.
문화 비교 연구로 유명한 홉스테드 인사이트의 지표를 보면, 한국은 불확실성 회피지수가 매우 높은 국가군에 속한다. 한국인들은 모르는 것,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여행에서 우연이 끼어드는 것은 실패를 의미할 때가 많다.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의 현지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 들어가면, 주변 테이블에서 들리는 건 익숙한 한국어뿐이다. 물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검증된 실패 없는 선택지이기에 맛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검증된 경험은 역설적으로 여행의 가장 큰 묘미인 다양성(우연)은 말살한다. 실패는 피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경험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맛집에서 인증샷을 찍고 '숙제'를 끝내듯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모습은 시험지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수험생의 모습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여행은 자유 여행이 아니라 자유관광에 가까운 것 같다.
여행사를 끼지 않았을 뿐, 우리는 구글맵과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라는 거대한 가이드북에 종속되어 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는 구글 맵을 켜고 평점이 높은 순서대로 식당을 고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허기와 직감, 그리고 우연에 몸을 맡긴다. 그가 골목을 헤매다 발견한 이름 모를 식당에서 첫 숟갈을 뜰 때 느끼는 그 전율은 남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검증된 맛을 확인하러 가는 길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진짜 자유로운 여행은 '모르는 것'과 함께 온다. 정보의 확인이 아닌 경험의 발견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순간이 아닐까?
* 참고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_RYbROH9p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