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워크 vs. 오너십 이코노미, 그리고 플랫폼
2주 전 한국관광공사의 여행업계 역량강화 교육을 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내가 교육하는 과목은 '디지털 여행 플랫폼의 이해와 상품기획'이다. 여행업계에 플랫폼 기반으로 개인이 창업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교육이 없어서 직접 제안하고 만든 과정이다. 부산 교육은 빠르게 마감됐고, 앞서 서울과 인천의 참가자들도 왜 이런 교육을 진작에 해주지 않았느냐고 나를 원망했다.(...) 모두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서 있다.
어쨌든 교육 하루 전에 도착했으니, 부산을 돌아볼 절호의 찬스다. 모처럼 '미래가 그립나요' 전시가 열리는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찾았다.
저임금 저숙련 노동의 플랫폼화, 고스트워크
구글 어스에서 3D 모델링에 참여했던 이들의 고백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보았다. 흥미롭다는 생각에 기꺼이 모델링을 수행했던 이들은, 자신이 구글을 위한 무료 노동에 이용된 사실을 알고 큰 배신감을 느낀다. '자발적 참여를 자본화하는 플랫폼 기업'이라는 작품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직업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책 <고스트워크>는 인공지능과 데이터 드리븐을 떠드는 디지털 플랫폼이, 사실은 데이터 라벨링을 위해 초염가로 인간 노동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마존에서 시간당 1.7달러를 받으며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일이 대표적인 고스트워크다.
한국에서는 소위 'N잡'이라 불리는 플랫폼 활동에서 고스트워크의 속성이 종종 나타난다. '네이버 블로그로 돈 벌기' 같은 수업을 듣고 키워드 최적화 포스팅을 반복하거나, '인플루언서'를 달기 위해 블로그나 지도에 끊임없이 상점 리뷰를 올리는 무료 노동에 가까운 일이 그렇다. 디지털 노동뿐 아니라 O2O 기반의 배달, 운전 등의 일도 넓게 본다면 여기에 해당한다.사실 플랫폼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고스트워크를 할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한다. 그렇다면 모든 플랫폼 노동의 본질은 다 같은 것일까?
향후 플랫폼을 통한 노동을 자아실현 여부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독립적 일은 가능하지만 사회적 효용과 보상이 낮은 고스트 워크(Ghost work),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일을 기반으로 삶과 직업을 재구성하는 오너십 이코노미(Ownership economy)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루빨리 찾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못 찾거나 미룰수록, 고스트 워크로 돈을 벌어야 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 전체 인터뷰는 히치하이커 뉴스레터 #47에서 볼 수 있다.
플랫폼과 오너십 이코노미
15년 이상 여러 대기업에 근무했지만 직장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았던 장 호스트는, 중장년의 적지 않은 나이에, 플랫폼을 통해 자신만의 직업을 성공적으로 만든 사례다. 퇴사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에어비앤비 숙소를 호스팅하던 중, 무료한 저녁 시간에 한국 음식을 대접했다. 그런데 외국인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폭발적이었다. 내친김에 쿠킹 클래스를 체험 쪽에 올려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외국인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투어를 늘려 지금까지 15개의 투어, 누적 400여 개 리뷰를 받은 부산의 대표 호스트가 됐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정식으로 여행업을 시작해 인근 관광 코스를 개발할 준비로 한창이다. 인터뷰 기사 바로 가기
1월 26일 복스닷컴은 '역대 가장 많은 미국인이 자영업으로 옮겨가는 이유'라는 기사를 통해 수 백만 명이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대(大) 퇴사의 시대'의 심리적 원인을 분석했다. 결국은 세상이 더 복잡하고 혼란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오너십(ownership, 주인의식)의 출현은 직장인에 비해 의료보험이나 세금에서 엄청난 불이익이 있음에도, 더 많은 미국인이 이를 감수하고 자영업을 선택하는 결정적 동인이다.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창업의 진입 비용이 혁신적으로 낮아진 것도 한몫한다. 즉, 플랫폼은 직업적 자아실현의 도구로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테크 기업이지만 최고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자아실현' 욕망을 채워주며 업계 선두에 올랐다. 여행 분야 외에도 수공예 아티스트가 작품을 판매하는 엣시(etsy)는 대표적인 오너십 이코노미 플랫폼이다. 두 회사는 최근 협업을 통해 엣시 아티스트가 공간을 호스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제페토를 '메타버스'로만 이해하지만, 크리에이터가 자아실현(수익)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것이 진정한 핵심이다.
앞으로는 소비자가 '공급자'로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한, 즉 개인의 창의성이 수익화되지 못하는 플랫폼은 수익화 가능한 플랫폼에 점차 밀릴 것으로 본다. 여행 분야에서는 빅데이터 기반으로 AI가 맞춤 정보와 상품을 제공하는 여행 OTA가 주류 사업 모델이었지만, 크리에이터 경제 관점에서는 지난 세대의 낡은 플랫폼일 뿐이다.(이 내용은 곧 출간할 책에 좀더 자세히 소개하기로) 개인의 관점에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어 재편되는 직업 세계에서, 자신만의 기술과 열정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저숙련 기술 기반의 플랫폼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
책 <여행의 미래> 출간 이후, 수 백여 곳의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면서 '플랫폼'에 대한 업계 종사자의 양가감정과 늘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플랫폼 노동의 속성이 다 같지는 않다. 플랫폼에 이용당할 것이냐, 이용할 것이냐 또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단지 기능이 편리하고 지출(소비)을 유도하는 플랫폼보다는, '좋아하는' 일로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을 선택하고 활용해 보기를 권한다. 나 역시, 그렇게 조금씩 적응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계속 도움이 되는 일과 교육을 하고 싶다.
김다영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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