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가 Folk를 만났을 때
해마다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앨범이 있다. 대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완성도 높은 정규앨범을 들고 나왔을 때 나만의 '올해의 앨범'이 되고는 하는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완전한 뉴페이스가 말도 안 되게 좋은 음악을 들고 나와 취향을 저격해버리는 경우.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게는 2016년에 만난 Gallant의 <Ology>가 그랬다. R&B를 듣는 재미를 알려준 앨범이었달까.
Gallant는 미국의 R&B 싱어송라이터이다.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소울풀한 가창력과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은 역동적인 비트 위에 시적인 가사를 쓰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인 아티스트다. 라이브 퍼포먼스도 아주 멋진데, 길게 늘어뜨린 유선 마이크의 선을 자유자재로 이끌며 비트와 하나가 된 몸짓으로 온몸을 이용해 노래한다. 아마 누구라도 그런 그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아티스트 '보아'의 데뷔 20주년 프로젝트 'Our Beloved BoA' 에 참여하며 <Only One>을 재해석하기도 하였다. 미국 알앤비 가수가 우리나라 대중가수의 곡을 커버했다고? 그렇다. 그는 예전부터 K-POP에 대한 애정을 몇몇 인터뷰에서 드러냈었는데 그 애정이 음악 작업으로 이어진 게 아닐지. 원곡의 서정적인 감성을 보존하면서도 본인만의 색깔을 잘 입혀내었으니 미국 알앤비 싱송라 버전의 <Only One>이 어떨지 궁금하다면 꼭 들어보도록 하자. 곧 그의 앨범들에도 손이 가게 될 것이다.
Gallant는 일전에도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선보인 적이 있다. 사실 이 글은 그 콜라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최애 콜라보는 Sufjan Stevens와 함께 한 <TOOGOODTOBETRUE>라는 곡. 아마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OST로 심심치 않게 들어 본 이름일 Sufjan Stevens는 포크 음악을 하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간결한 듯 하지만 여러 가지 악기의 사운드를 잘 쌓아 올려 그만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어쩐지 조금은 기운 없어 보이는 미성으로 속삭이듯 노래하는 점이 이상하게도 매력적이다. 그의 음악에는 조금은 영적인 느낌을 주는 가사도 종종 보이는데, 아마도 Sufjan Stevens와 Gallant의 가장 큰 교집합은 시적인 가사인 것 같다. 두 아티스트 모두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노랫말로 풀어내며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능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TOOGOODTOBETRUE>라는 곡은 Sufjan의 아름다운 사운드 위에 Gallant의 비트가 얹어진다. 도입부에서 세 번의 비트와 함께 Gallant의 본격적인 노래가 시작되면 제목처럼 너무 좋아서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중반부에 Sufjan이 노래하기 시작할 때는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는 둘의 조합에 놀라기도 했다. 알앤비와 포크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니, 역시 음악은 재밌다. 솔직히 가사는 완전한 해석이 어렵다. 조각모음을 하듯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갈 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음악은 언어를 뛰어넘는다. 우리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음'을 노래하는 두 사람의 차분한 미성을 그저 즐기면 된다. 후반부에는 Rebecca Sugar의 허밍이 더해지며 다이나믹이 확장되기도 하니 느지막이 등장하는 세 번째 목소리도 놓치지 말고 귀 기울여 들어 보자.
Take a little piece of this before you fall apart.
Sufjan Stevens가 얼마 전 새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무려 여덟 번째 정규 앨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그의 음악이 인상 깊었다면, Gallant와 함께 한 <TOOGOODTOBETRUE>가 썩 마음에 들었다면 이번 그의 정규 앨범 <The Ascension>을 정주행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마음에 쏙 드는 곡 하나쯤은 만나게 되지 않겠는가? Gallant와의 또 다른 협업을 기대하며 Sufjan의 아름다운 사운드에 빠져들어보자.
2020년 9월의 마지막 월요일
요즘따라 리듬 앤 블루스가 당기는 K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