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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K Nov 04. 2020

올해의 발견, 최유리

아름답고 아름답다 네 목소리

올봄의 초입에 엄마가 오다 주웠다는 듯 무심한 몸짓으로 작은 박스 하나를 건네셨다. 모 사회복지기관에서 꾸준한 후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받은 물건이라고 하셨다. 머그컵 사이즈의 박스를 열어보니 등장한 건 AI스피커 '카카오미니'였다. '나는 통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말씀에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집에 가져가서 말동무라도 해보시라고 제안했지만 어쩐지 대차게 거절당했다. 그렇게 정체모를 이 인공지능의 친구는 내 침대맡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작고 귀여운 어피치를 등에 업은 채로.


미니는 종종 내 두서없는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를 되풀이한다든지, 머리 위 동그라미에 노란 불빛을 빙글빙글 돌리며 반짝이기만 할 뿐 못 들은 척 대꾸조차 안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달라는 말은 찰떡 같이 알아듣고는 늘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거슬리지 않는 단정한 멜로디의 알람으로 아침을 깨워주기도 한다. 하루는 문득 듣고 싶은 음악이 있어 미니에게 이야기했다. 헤이 카카오, ‘사랑이 끝나서 다행이야’ 틀어줘.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목소리가 담긴 그 노래가 끝나니 미니는 이내 비슷한 분위기의 곡들을 선곡해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일전에는 특정 노래의 제목으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그 음악을 반복하여 들려주거나 해당 아티스트의 다른 노래를 이어서 들려주더니 그날은 뭔가 달랐던 것이다.


무언가 달랐던 그날, 나는 보석 같이 아름다운 목소리의 싱어송라이터 최유리를 알게 되었다. 




최유리 첫 번째 EP앨범 <동그라미>


최유리는 올 2월 <동그라미>라는 EP앨범으로 정식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다.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푸념>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그녀의 주무기는 어쿠스틱/일렉 기타로, 스트로크보다는 아르페지오를 즐기는 듯하다. 나를 단번에 사로잡은 곡은 1번 트랙의 <굳은살>이라는 곡인데 그 누구에게 들려주어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곡이라고 단언하고 싶을 만큼 예쁜 곡이다. 따뜻함을 담뿍 머금은 음색의 가성이 무척 매력적인 최유리는 자기고백적인 솔직하고 아름다운 가사를 한 음, 한 음 곰곰이 소리 내어 부르며 이야기를 전한다.


기타 하나를 매고 연주하는 그녀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노랫말과 기타의 두 멜로디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특히 기타의 사운드를 쫓다 보면 단순히 노래를 위한 반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유리의 기타 연주는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그리며 곡의 견고한 뼈대가 되는데, 그 뼈대 위에 진솔한 노랫말이 얹어지며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는 것이다. 마치 청과 홍이 안정적 대칭을 이루는 태극문양처럼 말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모난 곳 없이 원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앨범 <동그라미>를 꼭 들어보자.


날 계속 네게 머무르게 해줘
우리 함께 거칠어지자던 나의 바람이야
최유리 (출처 : SHOFAR MUSIC YouTube 채널)


최유리의 목소리는 한 겨울 난로 앞의 온기 같은 따뜻함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가도, 여름의 열기가 잠시 가신 고요한 신새벽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자신만의 멜로디를 그 언젠가 나도 모르게 그리워했던 멜로디인 것처럼 담담히 들려준다. 아직 제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세상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앞으로 다양한 채널에서의 라이브 무대와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 곡들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목소리가 닿았으면 좋겠다.



2020년 11월 겨울의 초입에서

따뜻한 동그라미를 알게 되어 행운인 K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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