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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K Oct 25. 2020

설원과 황야의 포화 속으로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강렬함의 그 영화

재미있는 영화란 어떤 영화일까? 그 재밌다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며 꾸벅꾸벅 졸던 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하겠다던 절친한 친구가 떠오르는 걸 보니 재밌는 영화는 이거지!라고 간단히 정의하기란 결코 쉽지 않겠다. 애초에 '재미'라는 건 다분히 상대적인 기준이니 교과서처럼 인덱스를 만들어 편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싶다. 그러나 OTT나 VOD 서비스가 일상이 된 요즘에는 재미의 척도로 삼을 만한 아주 간편한 기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영화를 보는 중간 일시정지를 자주 하였는가 아닌가이다.


국내 OTT 서비스 대장격인 왓챠에서도 '시청을 시작한 사용자의 몇 퍼센트가 줄곧 얼마의 시간 동안 본 작품인지'를 표기해주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모바일로 영화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일시정지나 빨리 감기 버튼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눌리고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정지 버튼에 손이 갈 틈이 없는 강렬한 영화도 있다. 몰입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이런 영화야말로 '재밌는 영화'가 아닐까?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에는 윈드리버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은 그 유명한 로키산맥의 지맥으로, 눈부신 설원의 풍광을 자랑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이기도 한 이 윈드리버의 혹독한 설원에서 한 소녀가 실종되며 영화 <윈드리버>는 시작된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윈드리버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코리'는 맹수가 출현한다는 의뢰를 받고 사냥에 나섰다가 실종된 소녀의 주검을 발견하게 된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수사권을 지닌 FBI 요원 '제인'이 거센 눈보라를 뚫고 윈드리버에 도착하며 본격적인 몰입의 시간을 선사한다.


신입 요원인 제인은 코리의 도움을 받아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두 사람은 스노모빌을 타고 새하얀 눈밭을 사방으로 가르며 소녀의 행적을 쫓는 데 전력을 다한다. 온통 낯선 것들로 둘러싸인 제인이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수사를 지휘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화를 잠시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비장한 눈빛의 코리가 물심양면으로 수사를 돕는 모습에는 그의 숨겨진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늑대들이 어떤 놈을 사냥하는지 알아요?
제일 약한 놈.
설원 위의 코리와 제인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의 각본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테일러 쉐리던이 직접 감독까지 도맡아 만든 작품이다. 전작에서 미루어볼 수 있듯 윈드리버 또한 어떤 고발의 메시지가 영화 곳곳에 숨어들어 있기도 하다. 메타포의 향연 속에서 MCU의 구성원으로 익숙한 두 얼굴인 제레미 레너와 엘리자베스 올슨 콤비가 펼치는 거침없는 연기는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하얀 눈밭이 미장센을 가득 채우는 이 영화는 한없이 차갑다가 숨 막히는 총격신이 등장하며 주체할 수 없이 들끓어 오른다. 추의 압력을 뚫고 끓어 넘친 물이 커피가 되는 모카포트처럼 과연 두 사람은 범죄자를 찾아내어 단죄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차가운 설원이 아닌 뜨겁게 달궈진 모래가 끝없이 휘날리는 곳에서의 강렬함도 만나보자. 제목부터 먼지 가득할 것 같은 <로스트 인 더스트>. 테일러 쉐리던의 또 다른 각본인 이 작품의 원제는 <Hell or High Water>로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의 뒤에 따라올 이야기가 무엇일지는 몰라도 배급사의 네이밍이 <로스트 인 더스트>라니 범상한 일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다. 까만 복면을 뒤집어쓴 '태너'와 '토비' 형제가 한 은행을 털며 영화는 시작된다. 조금은 여유로워 보이는 형 태너와 강도짓이 적잖이 내키지 않아 보이는 동생 토비는 어설프게나마 은행털이에 성공하며 오프닝 시퀀스를 장식한다.


태너, 토비 형제 콤비가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또 다른 콤비가 등장하며 영화는 전개로 도약한다. 베테랑 보안관 마커스와 앞길이 창창해 보이는 젊은 보안관 알베르토 콤비는 여느 형사물에서 보던 파트너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를 깔보는 듯한 언사의 디스전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두 사람은 은행털이를 멈추지 않는 두 형제의 행적을 쫓으며 수사망을 좁혀나간다. 각자의 선을 그려가던 두 콤비가 하나의 시퀀스에서 교차점을 만들며 이 영화는 파동의 정점을 찍는다. 텍사스 황야에서의 흩날리는 먼지 속 라이플 총격전은 어떠한 결말을 맺게 될까?


가난은 전염병 같아서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사람을 괴롭히죠.
내가 아는 사람을 전부 감염시켜요. 하지만 내 자식들은 안돼요.
태너와 토비 형제 (출처 : 네이버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범죄물 치고는 차분한 흐름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대개 주인공이 은행을 털어 돈을 손에 쥐기까지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로 중심을 잡는 하이스트 무비와는 달리 범죄 행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천천히 녹여낸다. 데이빗 맥킨지 감독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채무의 늪에 빠진 두 형제, 인디언 혈통 청년과 전형적인 백인 중년의 보안관 듀오를 큰 줄기로 삼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100여분의 러닝타임 안에 야무지게 담아내었다. 텐션을 잃지 않으며 곳곳에 유머가 심어져 있는 몰입의 서부극을 보고 싶다면 로스트 인 더스트의 재생 버튼을 눌러보자.



2020년 10월 영화 보기 좋은 주말에

몰입의 시간이 필요한 K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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