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에는 아이가 넷이었다.
하지만 숨겨진 아이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내 뒤를 이어 생긴 딸아이.
그 아이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뱃속에서 죽임을 당했다.
엄마는 딸 셋을 낳는 건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들은 귀하고 대를 이을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만, 세 번째 딸은 굳이 원하지 않는, 없어도 되는 거였다.
당시 산부인과에서 아이 성별을 알려주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법을 어기면서 알려주는 곳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음성적으로 아이를 낙태하는 것도 가능했다.
엄마가 정확히 어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해석하는 나의 시선은 세월이 흐르며 바뀌어갔다.
맨 처음 엄마에게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은 열 살 남짓한 때는 '엄마가 그렇게 간절히 아들이 낳고 싶었구나'라고 단순하게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만한 시기가 된 지금, 나는 엄마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도 아닌 그 사건이 너무나 슬프게 와닿았다. 동시에 나도 어쩌면 죽을 수 있었다는 가능성이 아프게 나를 찔렀다.
작년 어느 날엔가 한밤 중에 엉엉 울면서 그 아이의 죽음을 애도했었다.
너무나 미안하다고... 내가 딸이어서..
나와 같은 성별을 갖고 잉태된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 통제 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워진 아이의 운명이 서러워 한참을 울었다.
부모님은 셋째를 낙태한 후, 또 아이를 가지려고 시도했다.
결국은 또 딸이 생겨 딸을 낳았고, 3년이 지나고 나서야 아들을 낳았다.
이제는 이 모든 일이 무모하고 무식해 보인다고 하면 패륜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엄마는 카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이다.
카톨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피임도, 낙태도 금하고 있다.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셋째 딸을 낙태한 것은 믿는 교리와 삶의 간극이었다.
왜 그렇게나 아들이 필요했는지.
내게는 거의 평생을 갖고 있었던, 풀리지 않는 거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냥 아들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그런 구시대를 살아갔던 것뿐이라고.
나는 대충, 나름대로 답을 내리고, 이미 낳아버린 딸들과 아들을 키워낸 부모를 그저 바라보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가진 알 수 없는 억울함과 애도의 감정, 궁금증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왜 아이를 넷이나 낳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니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셋이든 넷이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날 선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왜 아홉, 열씩 낳으면서 살았냐고.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하면 자신이 뭐가 되냐고.
아빠는 당시 아이 넷을 낳은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했다.
문화 전통의 계승을 위해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노라고.
자식이 재산이라는 말도 있었고, 자기 밥그릇 들고 태어난다는 속설도 있었다고.
물론 집안 어르신들의 압박도 있었고, 카톨릭 교리의 배경으로 피임을 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아이를 지운 적도 있었다고.
그리고 당시 다녔던 회사의 박봉으로 둘을 키우나 셋을 키우나 마찬가지로 힘들었을 거라고.
부모에게 직접 답을 들으면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면 속편할 텐데, 이 모든 역사가 불편한 나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지워진 그 아이를 떠올릴 때면 눈물이 난다.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를 끝까지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