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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 Apr 04. 2023

마음이 말을 걸어올 때

8주간 상담을 받았다.

보건소에서 정신건강을 관리해 주는 무료 상담 프로그램이 있었다.



슬픔이 너무 무거워서 당장 이 짐스런 감정을 좀 내다 버릴 수 있었으면 했었다.

선생님은 감정은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감정은 어떤 순간에도 같이 데려가야 하는 존재라서, 감정을 내 마음속에서 깨끗하게 잘라서 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게 어쩌면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온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일리가 있었다. 지금 엄마의 죽음 때문에 닥치는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전에도 나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데 익숙했다.


상담을 하면서 왜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번 깊이 얘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내 감정을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어릴적 어떤 이유에서건 울면 부모님은 화를 내면서 당장 울음을 멈추라고 했다.

때로는 매와 꾸중을 동반한 윽박지름을 들어야만 했다.


애초에 감정표현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환경이 아니었다. 기쁨, 즐거움 같은 단순하고 긍정적인 감정만이 인정받을 감정인 것처럼 학습하며 자랐던 것 같다. 그러나 살다 보면 별의별 상황에 다 처하게 되고 그때마다 찾아오는 새로운 감정들은 나에게 새로운 과제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 나는 내 주장을 하거나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괜히 슬퍼 울먹이기도 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유난히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만날 때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엄마의 죽음은 내게는 살면서 만난 가장 큰 고통이었다.

밀려오는 슬픔, 회한, 후회, 애증, 아픔과 같은 갖가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 앞에서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일을 거의 처음으로 해보았던 것 같다.


내 마음을 알아차려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은 날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마주 대하여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말없이 안아주는 것은 내가 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슬플 땐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아파하는 것, 말 그대로 마음껏 말이다.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얼른 새로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는 말을 쉽게 들으면서 산다.

뜬구름 잡는 망상에 빠져있지 말고 현실에 집중하라는 잔소리도 세트로 온다.


물론 마음을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그 시간은 정말 느리게 간다. 그러나 반드시 이 느린 방법으로 가야만 한다.

맘 속의 상처와 고통은 대충 접어두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나는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두는 것이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치유임을 믿게 되었다. 여전히 고통에 아파하면서도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법을 서투르게 배워나갔다.


생의 의지는 없었고, 미래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내 마음이 건네온 고통의 말들에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었다.

그게 어쩌면 죽지 않고 살고자 하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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