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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희 Oct 11. 2022

어쩌다 엄마 박사

면접이라니 

나는 무슨 커다란 꿈이 있어서

박사에 지원하고 박사를 마친 건

아니었다. 


그냥 자폐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가 있으려니

장시간의 비자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그냥 나는 

교육학 대학원 생이 되었고

지난 6월 어찌어찌 그 긴 

여정이 끝이 났다. 


특수 교육 분야는 

내 아이를 더 이해하고

내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그리고 나는 어떤 입장으로

자폐를 이해해야 할지를 

알게 해 주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사회과학과도

교육학과도 그다지 맞는 

사람은 아니었다. 


교육학은, 그렇게 실용적이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비판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의 치열함은 그다지 

담아내지 못하는 

먼가 미적지근한 학문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렇지만 투자한 시간과 돈이

있으니, 학위를 받고는 먼가 

그와 관련된 직종에 원서를 

한 번은 내 봐야지 싶어서

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한국 이력서 형식을

많이 써 보지 않아서, 

사진을 요구하는 것도

무슨 성장배경부터 쓰라는

자기소개서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만의 이력서라니..


3만 원을 들여 사진을 찍었다. 

괜한 돈 들이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지원자의 마음가짐과

자세 문제있은 거 같아서

이력서용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 사진 속의 나는

참 많이 늙어있었는데

눈부시게 발전한 보정 기술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사실 나는 특수 교육 분야와

교육 평가분야를 같이 했는데

특수 교육 분야에서 냈던 곳들은

별로 연락이 오지 않았고

교육 평가와 관련된 연구소들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학원 강사를 오래 했던 나는

그런 조용한 분위기의 사무실이

정말 적응도 안되고

그런, 소장님으로 불리는

나이가 드신 남성분과 이야기 한지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참고로 나의 지도 교수님은 

나보다 1살 정도 많으시다...)


나이 45세가  되어 

서울대도 안 나오고 학벌이 약하다는 

말을 듣는데, 

그분의 서울대 벨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학벌이 평생 가는 거구나 

싶은 마음과 요새도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구나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분 말에 따르면

내가 면접을 본 그 팀은

모두 서울대 나오시고

엄청 좋은 학교에서 박사들을

하셨다는데... 

암만 최신 학문을 하고 와도

저런 분 비위를 맞춰야 되는가

보구나 싶은 게.. 먼가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분이 

프로젝트를 따오시니 

어쩔 수 없겠지... 싶으면서도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끼는

옛날 사람 느낌이라고나 할까.




면접 본 사무실 건물은

기계식 주차 건물이었는데

그날따라 주차 기계가 고장이 

나서 나는 다른 빌딩에 주차를 

해야 했다. 


나는 학원 고를 때

주차장에 많은 신경을 쓴다.

내 주차도 중요하지만

학부모들의 주차도 중요하니까...

내가 비싼 임대료를 내는 것은

나의 학부모들에 대한

존중이라고나 할까...


기왕 서울대 안 나왔다고

한 소리 들을 거 같으면

주차장에 차라도 좀 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똑똑한 분들도 

돈을 아끼려니까 

주차장이 없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도...


학원 강사를 한참 할 때

나도 좀 빨간 날 놀아보고

휴가도 좀 맘 편히 가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9시-6시에 

월화수목금 일을 나갈 생각을

하니.. 


도대체 애 학교는 언제 따라가 보고

엄마 병원은 언제 데려가고

백화점 및 공원도 엄청 

사람 많을 때만 다녀야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결국 직장생활은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엄마의 한마디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네가 20대도 그게 안돼서

직장 때려치웠는데 40대에 되겠니."



다른 대학 연구소도 몇 군데

면접도 보고 제안도 받았는데

역시나 월화수목금 매일 아침

출근은 무리지 싶었다. 


차라리 월화 목금토는 일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말이다. 

(평일 하루는 내 시간이 있고 싶다.)



이래서 결국.. 

나는 또다시 프리랜서의 삶으로..

나이가 들어도,

가방끈이 길어져도

역시나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어쨌건 이제 이력서 

내는 것은 그만두었다.

맘 편히 한국의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정말 감사하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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