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미, 오만과 편견, 유 콜 잇 러브
배우 서현진을 좋아한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는 몇 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챙겨 본 것 같다. 현재 방영 중인 ‘러브 미’에도 서현진이 나온다. 유재명도 함께 출연하고, 트와이스 다현의 첫 연기 데뷔작이라고 한다. ‘러브 미’를 볼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사실 1화를 보고 나서는, 더 볼지 여기서 멈출지 고민했다. 메인 커플로 보이는 서현진의 상대 남자 배우 때문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굳이 극 중 인물에게 깊이 감정 이입을 하며 볼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메인 커플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재명과 윤세아의 관계가 인상 깊다. 배우자를 잃은 중년의 남녀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편안해지는 과정.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비추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반드시 절절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편안해진다.
그리고 ‘러브 미’에는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을 건드리는 마력이 있다. 별것 아닌 장면에서,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어느 한 부분을 건드려 기어이 그것을 둘러싼 모든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상상하게 만든다.
극 중 준경(서현진)이 돌아가신 엄마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서 지워버리는 장면이 있다. 무심코 열어 본 최근 통화 목록에, 돌아가신 엄마의 번호가 남아 있다면…… 나도 그랬을 것 같다. 지워버렸을 것 같다. 물론, 지운다고 해서 나에게서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8화까지 본 지금, 내가 생각하는 ‘러브 미’는 형태와 의미가 변화해 가는 가족의 단상이다. 몇 년 전부터 느꼈지만, 한국에서 가족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 변하기 시작했다. 형태 역시 변하고 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변하고 있다. 너와 나의 관계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러브 미'를 보며 머트리얼리스트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2005년판 '오만과 편견'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사람 머릿속의 알고리듬은 유튜브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제인 오스틴은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신사의 딸로 태어난 여인들의 삶을 그려낸 작가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시대가 부여한 여성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가운데서도, 주체적으로 삶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들에게 주체적인 삶이란, 결국 쟁취하는 사랑과 동의어에 가깝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들이 겪는 대부분의 고난은 결국 ‘돈’과 맞닿아 있다. 신사의 딸로 태어났으나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재산을 남자 친척에게 상속해야 했던 당시의 법은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데 있어, 확실하고도 부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재산이 없는 여성은 결혼하기 어려웠다.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처녀로 남아 독신으로 살거나,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해야 했던 것이 당시 많은 여성들의 운명이었다.
한편, 집안에 재산은 있지만 사랑하는 상대가 돈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돈 없는 남자는 결혼하기 어렵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오만과 편견'은 지방에 사는 베넷 집안의 다섯 자매의 "사랑 찾아 삼만리"에 대한 이야기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들이 없는 집은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모든 재산이 상속된다. 베넷 집안의 다섯 자매에게 결혼은 생존이란 얘기다.
‘오만과 편견’은 책으로도 여러 번 읽었고, 1995년 BBC 드라마도 두어 번 봤으며, 2005년 영화 역시 여러 번 봤다. 특히 미스 베넷과 미스터 베넷을 좋아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네 엄마와 아빠.
미스 베넷은 특히 현실적이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 다섯 자매를 모두 출가시켜야만, 그들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엄마는 정확히 알고 있다. 자식들이 잘 살길 바라는 것은 모든 엄마의 꿈이다.
그래서 미스 베넷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자 신랑감이다. 어디에 땅이 있고,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연소득이 얼마인지는 너무도 중요한 정보다. 내 딸들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게 해 줄 신랑감을 찾는 일은, 미스 베넷 인생의 최대 과제다.
드라마와 영화를 처음 보면 “아니, 저 주책맞은 아줌마는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면, 말벌 아줌마 같은 미스 베넷의 행동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당연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이런 미스 베넷을 살짝 부끄러워하는 딸이 있었으니, 베넷 집안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리지) 베넷이다. 뛰어난 미모의 언니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충분히 출중한 외모에 지성까지 겸비한 엘리자베스는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신여성이다.
신여성의 장점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려 애쓴다는 점이고, 단점은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엘리자베스는 미스터 다아시와의 첫 만남에서 편견을 갖게 되고, 그의 행동을 오해한 채 그를 예단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으면서도.
물론 미스터 다아시 역시 문제가 있다. 그는 겉과 속이 꽤 다른 사람이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몹시 오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한다. 일종의 방어벽이라고 볼 수 있다. 외모 멀쩡한 부잣집 도련님이니, 수없이 풍문에 오르내렸을 테니까. - 신여성의 주체성은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부잣집 도련님의 오만함은 주변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렇다면 제목을 그대로 반영한 두 남녀의 관계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2026년 1월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이런 종류의 결말은 오히려 찾아보기 어려운 쪽에 가깝다.
그래서 '연프'가 인기인 것 아니겠는가.
‘오만과 편견’까지 보고 나니, 나의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유 콜 잇 러브’로 이어졌다. 이 영화의 원제는 L’étudiante(여학생). 대학 강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 발렌틴과,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난 팝음악 작곡가 에두아르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 '연프'가 없던 1988년의 20대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 자유롭고 솔직해서 좋았던 그 시절.
이 영화 역시 세 번쯤 본 것 같다. 처음 두 번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발렌틴은 저런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하게 된다.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어쩌다…라는, 다소 단순하고 편견 섞인 질문이었다.
그런데 십여 년 만에 다시, 천천히 곱씹으며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저런 남자라서’ 빠져들었구나.
프랑스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솔직함'이다. 감정을 쏟아놓는다. 사람이 관계 속에서 느끼는 온갖 감정을 고스란히 쏟아놓은 영화 안에서 나는 내 감정을 동기화할 수 있다. 또는 나도 영화 속 감정의 흐름을 따라 솔직해지고 용감해질 수 있다. (그 순간만은) - 이 점은 프랑스 소설을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느끼곤 한다.
발렌틴과 에두아르는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현재 상황도 너무 다르며, 이루고자 하는 것도 아주 다르다. 그럼에도 사랑에 빠졌고 한쪽은 빡빡한 시험 준비 속에서, 다른 한쪽은 그만큼 힘든 연주 투어 일정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사랑을 이어나간다.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만났으니 헤어져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이상하지 않은 일을 실행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그런 순간에 에두아르는 나는 바람둥이고 너처럼 이기적인 여자는 처음 만나봤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 아..... 저런 남자라서 발렌틴이 좋아했구나.
발렌틴은 최종 시험에서 몰리에르의 '인간 혐오자'를 바탕으로 남녀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라는 주제를 시험 과제로 받는다. 시험장에 나타난 에두아르를 발견한 발렌틴은 울면서 시험을 이어나간다 -
제가 답변을 하면서 제 얘기를 하면 안 되나요? 시험 주제가 제가 처해 있는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행복을, 당신의 행복보다 더 우선시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도록 지켜보며, 그의 실망에 함께 울며, 그의 기쁨에 함께 웃을 수 있으신가요?
마지막으로 알프레드 드 뮈세의 말로 끝맺겠습니다 - “모든 남자는 거짓되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수다스럽고, 오만하고, 비겁하고, 경멸스러우며, 육욕적이다. 모든 여자는 배신하며, 허영이 있으며, 인위적이며, 호기심 많고, 타락했다. 그러나 이토록 불완전하고 추한 두 존재의 결합보다 더 성스럽고 숭고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앞서 썼듯이, 솔직하고 용감하다. 발렌틴은 그렇다. 에두아르는 그렇다.
나는 그렇지 않다.
발렌틴의 독백은 챗지피티의 번역을 빌렸다. 세상살이가 참으로 편안해졌으나 너와 나의 관계는 여전히 어려우니 이건 사람의 일이라 그러하다.
소피 마르소의 미모는 대단했구나를 또 한 번 느꼈다. 그는 또한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다. 이래서 007에서 악녀가 가능했구나라고 생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