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이상이라는 허상

유리 모딘,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by 마나스타나스

20세기의 대부분 동안 세계는, 어느 방식이든, 두 진영으로 갈라져 전쟁을 벌였다. 명분은 있었다. 그러나 사실 명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끝도 없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명분타령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말장난일 뿐이었다. 대립은 전장을 넘어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고, 같은 편 내부에서도 균열은 시작되었다. 그것은 조용히 번져나가며, 형태를 달리 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충성과 배신, 신념과 회의, 우정과 배반, 이상과 현실 — 누구든 한쪽을 택해야만 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은 바로 이런 시대를 통과한 이들의 삶을 따라간다. 전쟁의 '승리'가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서, 서로를 향해 은밀히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냉전의 시대였다. 그 속에서 신념과 이상을 택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규정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서서히 드러나는 삶의 균열을 (아마도) 조용히 서술한다. 해석이라기보다는 사실에 최대한 가까워지려는 태도를 유지한, 전기적 기록에 가깝다.


벤 매킨타이어의 <스파이와 배신자>는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의 서방을 택하게 된 이유가 전기적 서사로 서술되었다면,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은 소련에 충성하기로 결심한 다섯 동지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한, 보다 절제된 시선의 전기 자체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작가 유리 이바노비치 모딘은 러시아 시골에서 태어났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지적 능력이나 역량 면에서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영어를 배운 덕에 소련 공산당의 중심에서 반대 진영의 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된다. 역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절한 선배를 적절한 시점에 만난 덕분에 일을 빠르게 익힐 수 있었고, 그렇게 그는 이른바 케임브리지 5인방의 공작관이 된다.


<스파이와 배신자>에서도 느꼈지만, 공작원들을 관리하는 공작관이라고 해서 특별히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아니다. 그들은 분명 특별하다. 공작관들은 평범함으로 가장한 비범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이들의 특별함이 드러난다. 그들은 평범한 척하지도, 비범한 척하지도 않는다.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유리 모딘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빛나는 지성과 자타가 공인하는 비범함으로 무장해, 다루기 쉽지 않은 케임브리지 5인과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것은 우정보다는 멀지만, 신뢰보다는 더 가까운 어떤 상태였던 것 같다. 유리 모딘이 있었기에, 다섯 스파이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이 믿는 신념과 이상에 충실할 수 있었다.


"신념과 이상"


킴 필비는 ‘나라를 팔아먹은 자’로 유명하다. 그래서 나는 늘 궁금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그의 탁월함을 알아보고 발탁해 해외정보부의 고위직까지 맡긴 그 나라를, 결국 배신하게 만들었을까.


유리 모딘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다섯 동지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금전으로 엮일 경우 임무의 목적과 그들이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동기가 흐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킴 필비를 비롯한 다섯 명의 스파이들에게 그들의 임무는 ‘배신’과 ‘충성’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념과 이상’의 문제였다.


이 대목에서 케임브리지 5인방의 양가적 태도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양가적이라는 표현을 아주 싫어하지만, 이들에게만큼은 정확하게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신념과 이상’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출신이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귀족 계층에 속해 있었고, 훌륭한 학교에서,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꿈꿀 수 없는, 아주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프롤레타리아의 삶이 아닌, 부르주아 혹은 귀족의 삶. 바로 그 안에 속해서 세계의 다면적인 부분들을 엿볼 수 있었기에, 그 삶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세계 혁명’을 꿈꿀 수 있었고, 그에 동조할 수 있었다.


5인방 가운데 가장 비범했던 가이 버제스는 말년에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소련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영국 특유의 귀족적 삶을 끝내 잊지 못했다. 그는 결국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그에 걸맞은 삶을 누리고자 했고, 소련은 그 기대에 응답했다. 킴 필비와 도널드 매클린 또한 소련에서 아주 풍족한 삶을 누렸다. 귀족의 삶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했던 지점은, 그 세 사람 모두 소련에 머무르며 인민들의 실제 삶을 목격하고도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의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소련의 체제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 최면에 가까운 확신을 끝내 내려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버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식인은 비겁하다. 빛나고 비범할수록,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수록 더더욱 비겁해진다.


- 혁명이란 무엇이며, 신념과 이상이란 무엇인가.


비겁함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 보면, 이들 다섯 명이 그러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까지 생각이 닿는다.


거듭된 전쟁 속에서 사람들은 죽어가고, 절대 권력은 세상을 집어삼키기 직전이며, 나의 조국은 그저 힘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누려온 이 자유와 부 역시, 언젠가는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비범함과 재능을 이용해 세상을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계 시민을 구하고, 부를 나누며,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그들은 어쩌면 그러한 구원자의 이상을 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였으니까.


+ 유리 모딘은 그 5인방이 미국을 싫어했기 때문에, 미국에 불리한 정보는 많이 넘겼지만 그들의 조국인 영국에 해를 끼치는 정보는 단 한 번도 넘긴 적이 없다고 말한다. 유리 모딘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 그것을 수행함으로써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명예일까, 돈일까.

그러나 스파이들은 그저 스파이일 뿐이다. 그림자 속에서 살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존재들. 평범한 척도, 비범한 척도 하며 살아가는 나는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그들에게는 분명 있을 것이다.


+ 요즘의 우리 사회를 보며 지식인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도 함께 떠오른다. 할 말들이 너무 많아서 말을 할 수 없게 된 시대를 예언한 이청준.


할 말들은 너무 많은데 정작 해야 할 일 앞에서는 침묵하며, 소문 속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전짓불을 비추는, 그 불빛 뒤의 비겁한 존재들이 오늘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어디에 속하고 싶은 것일까. 어디에 속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헤 수사를 통해, 지식을 갖춘 자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단 하나의 비밀을 영원한 침묵 속에 묻어두고자 사람들을 죽인 인물, 호르헤 수사.


+ 제3 국으로 향하던 이명준이 바다를 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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