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과 셸리를 읽으며

by 마나스타나스

한글로 쓰인 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시가 무엇이냐 한다면 나는 정지용의 향수라고 말할 것이다.


서정주의 시도, 윤동주의 시도 너무나 아름답지만- 정지용의 시는 수채화 같다.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지 못했던, 일상으로 이루어진 인생의 기쁨과 슬픔은 그의 시상을 통해 묽게 번지며 형상을 이룬다.

물빛에 옅어진 색들은 눈을 통해 겹쳐지며, 짧은 감탄사와 함께 마음 안에서 미소 짓게 하며, 눈물방울을 떨구게 하기도 한다. 그의 시가 그렇다.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그곳, 나의 어린 시절이 묻어 있는 그곳- 정지용은 어쩌면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곳‘에서, 그의 아들을 다시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정지용- 향수 鄕愁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셸리. 영국드라마 루이스 경감의 한 에피소드는 그의 시를 소재로 한다.


’달빛은 바다에 입 맞추는데- 이 모든 입맞춤이 무슨 소용 있으리, 그대가 내게 입 맞추지 않는다면‘


보는 그대로를 기억하고 재현할 수 있는 필립은 아마도 넬을 사랑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예술이라 했던 넬.

셸리를 좋아했던 넬을 필립은 분명 사랑했겠지, 그런 그를 넬도 사랑했을 것이다.


에피소드는 아련하게 끝난다.

Love’s philosophy

The fountains mingle with the river
And the rivers with the Ocean,
The winds of Heaven mix for ever
With a sweet emotion;
Nothing in the world is single;
All things by a law divine
in one another’s being mingle –
Why not I with thine?

See the mountains kiss high Heaven
And the waves clasp one another;
No sister-flower would be forgiven
If it disdain’d its brother:
And the sunlight clasps the earth,
And the moonbeams kiss the sea –
what are all these kissings worth,
If thou kiss not me?


사랑의 철학


샘물은 강물과 어울리고,

강물은 바다와 함께 한다.

하늘의 바람은 언제나

달콤한 감정 속에 뒤섞인다.

이 세상에 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성한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은 서로의 존재 속에 함께 한다.

왜 나는 그대와 함께 할 수 없는가?


높은 하늘에 입 맞추는 산들을 보라.

물결들은 물결들을 끌어안는다.

그 어떤 자매 같은 꽃도

형제 같은 꽃을 거부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햇빛은 대지를 끌어안고

달빛은 바다에 입 맞추는데

이 모든 입맞춤이 무슨 소용 있으리,

그대가 내게 입 맞추지 않는다면.


셸리는 옥스포드 재학 중 불륜스캔들로 퇴학당한다. 예술가란……


+ 나는 옛날 시를 좋아한다. 옛날 시만 좋아하는 것 같다.


+ 자주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린다. 그때마다, 많이 슬퍼서 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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