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함께 살아가기

잭 메기트-필립스,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2020

by 달리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의 원제는 『The Beast And The Bethany』다. 제목부터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영국의 극작가 겸 각본가인 잭 메기트-필립스Jack Meggitt-Phillips의 소설 데뷔작이다. 괴물과 인간이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산다는 점에서 <미녀와 야수>와 유사하지만, 두 인물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이익 관계의 당사자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난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제작진이 이 작품의 영화화를 최종 결정했다고 하는데, 소설을 보면 제작진이 어떤 그림을 구상하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주인공 에벤에셀 트위저Ebenezer Tweezer는 512살 생일을 일주일 앞둔 '젊은이'다. 그가 불로불사의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저택 15층에 사는 괴물의 신비한 힘 때문이다. 괴물에겐 어떤 물건이든 마음먹은 대로 토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에벤에셀의 젊음을 유지하는 생명의 묘약도 그중 하나다. 에벤에셀은 때마다 괴물이 요구하는 특별한 먹이를 구해주고 그 대가로 온갖 선물을 받아 막대한 부와 젊음을 소유한다.


이 이야기에서 에벤에셀은 괴물의 대척점에 서있지 않다. 둘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가족이다. 에벤에셀은 괴물 덕분에 거의 512년을 고통이나 슬픔을 모른 채로 살아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계속해서 젊고 호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런 그가 512살 생일 선물로 생명의 묘약을 요구하자 괴물은 그전에 어린아이를 먹어야겠다고 말한다. 에벤에셀은 혼란에 빠진다. 괴물은 그동안 온갖 동물과 물건을 먹어치웠지만 사람을, 그것도 어린아이를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안의 괴물과 공존하며 유혹에 빠져드는 이런 이야기는 북미 지역의 어느 원주민 부족에 전해 내려온다는 설화를 떠오르게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매 순간 두 마리 늑대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중 한 마리는 악하고 다른 한 마리는 선하다는 이야기. 가장 최근에는 루이즈 페니의 미스터리 소설 『아름다운 수수께끼』에서 이 설화의 모티브가 인용된 장면을 보았다.


"(……)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다가와 그의 내면에서 늑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마리는 회색이고 한 마리는 검은색이었죠. 회색은 할아버지가 용감하고, 참을성 있고, 친절한 사람이길 원했습니다. 검은색은 할아버지가 무섭고 잔인하길 원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소년의 마음을 휘저었고, 아이는 며칠 동안 그 이야기를 생각하다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어떤 늑대가 이길 것 같아요?'하고 물었지요."
(……)
"내가 먹이를 주는 녀석이지."

루이즈 페니, 『아름다운 수수께끼』, 피니스 아프리카에, 2020, 581-582쪽

그리고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도 이 설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에벤에셀은 물론 이기적이고 불쾌한 인간이지만,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칠 만큼 악랄한 인물은 아니었고, 괴물도 처음부터 잔인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에벤에셀이 어릴 적 부모님 몰래 다락방에서 키우던 작고 가엾은 괴물은, 분명 끔찍한 탐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둘의 거래가 반복되면서 괴물의 몸집은 커지고 식성도 변했다. 어린아이를 먹을 수는 없다며 단호히 선을 그으려 하는 에벤에셀에게 어느덧 비대해진 괴물이 말한다.


"뭐? 지금 무례하다고 했어? 윈틀로리언 앵무새를 나한테 가져다줄 땐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안 했어? 400년 전, 지구에 마지막 남은 도도새를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땐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 안 했어?"(27-28쪽)


사소하지만 분명한 악행을 숨 쉬듯 저질러온 사람이 거악에 맞서 갑자기 선을 긋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우리가 아주 작은 악에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꾸준히 먹이를 먹고 몸집을 불린 악은 끝내 마음의 주인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어린아이 같이 여리고 선한 양심뿐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베서니가 바로 그 양심을 대표한다.


베서니는 에벤에셀이 젊음에 대한 욕망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괴물에게 먹이로 바치기 위해 보육원에서 데려온 아이다. 괴물은 깡마른 베서니를 보고는 먹기 좋게 살찌우라며 에벤에셀에게 사흘의 시간을 준다. 베서니는 사고뭉치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미를 지닌 말괄량이지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동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베서니와 사흘을 함께 보내면서 에벤에셀은 점점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회복한다. 처음에 에벤에셀의 방은 괴물의 방 바로 아래인 14층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내려오면서 에벤에셀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흥미롭게 암시한다.


이제 이 작품의 제목이 어째서 『The Beast And The Bethany』인지 윤곽이 드러난다. 이건 에벤에셀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줄다리기를 괴물과 베서니의 싸움으로 구체화하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 모두는 15층 꼭대기 다락방에 꼭꼭 숨겨둔 괴물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짓궂은 베서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둘 중 어느 쪽에 먹이를 줄지는 에벤에셀에게,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특히 어린이― 독자들에게 달려있다. 괴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니. 아이들에게 이만큼 재미있고 완벽한 소재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