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책보다 먼저 보았다. 원작의 매력적인 톤에 감독과 배우들이 가진 특유의 색깔이 더해지면서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만들어진 느낌이다. 시리즈 중간중간에 내 취향에 전혀 맞지 않는 이미지와 내러티브가 불쑥불쑥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을 쉽게 재단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특별한 인상 때문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주인공 안은영이 근무하는 목련고등학교의 아침 체조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명 '내 몸이 좋아진다' 체조. 원작에는 없는 이 체조가 시리즈의 서두에 배치됨으로써 얻는 효과는 분명하다. 관객은 이 장면을 통해 학교에 깔려있는 어둡고 음산한 무언가를 감지하게 된다. 체조에 동원되는 구호와 정반대로, 광신적이고 건전하지 못한 정서(또는 존재)가 도사리고 있음이 불안하게 암시되는 것이다. 또한 다분히 오싹하고 컬트적인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건 이제부터 벌어질 모든 기이하고 엽기적인 사건의 배경이 다름 아닌 '학교'라는 데에서 오는 익숙한 아이러니 때문일 것이다.
목련고의 아침체조 모습. 학교 공간의 아이러니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사실 원작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은 컬트적 뉘앙스를 그렇게 짙게 뿜어내지는 않는다. 저자 정세랑이 시리즈의 각본 작업에 합류하여 안정감을 더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극화·영상화 과정에서 감독과의 시너지가 작품 전체적인 톤이나 뉘앙스에 상당히 큰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결과물은 적어도지금까진 성공적이고.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학교를 소재로 하면서도 성장 드라마나 괴담 스릴러의 공식을 상당히 크게 벗어났거나 영리하게 우회했고, 그럼에도 흥미진진하고 신선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굳이― 지난 세대 성장 드라마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결핍되고 정체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그 요소들을 극복하거나 채우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이지도 않는다. 선한 인물은 완전히 선하지 않고 악한 인물도 아주 극악무도하지만은 않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주변인들의 경계도시에서, 드라마틱한 성장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어쩐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닮지 않았는가.
―굳이― 지난 세대 괴담 스릴러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목련고는 과거에 정인을 잃은 젊은이들이 빠져 죽었다는 연못 위에 세워졌고, 그 연못의 기운을 누르는 지하실의 압지석을 들어내자 실연당한 학생들이 홀린 듯 옥상으로 향한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학교괴담의 틀 안에서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도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괴기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명랑하고 쾌활한 정서가 느껴지는데 이건 아마 안은영이란 캐릭터의 발랄함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이 발랄함마저도 마이너하게 묘사된다.) 안은영의 영적 능력은 장난감 권총과 무지개 칼을 매개로 하여 발휘된다. 괴담 스릴러의 주인공으로서는 다소 과한 발랄함이지만 역으로 이 언밸런스가 작품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준다. 한국의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코미디 퇴마 활극이라니.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은 짤막하지만 완결성을 지닌 여러 에피소드가 연작 형태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각 에피소드가 적당히 간격을 두고 벌어지는 독립적인 이야기들로 읽히기 때문에 플롯의 흐름이 단순하고 메시지에 군더더기가 없다. 심오하거나 난해할 건 별로 없고, 그저 긴 학창 시절을 지나온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법한 테마를 그리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그건 이 소설 속 학교가 현실의 학교를 부분적으로나마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소설과 현실을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는 없겠지만 몇몇 디테일은 한국의 학교제도가 내포한 모순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학교는 평범한 아이들의 기대와 바람보다는 확실히 더 잔인하고 냉혹한 곳이다. 사회란 게 원래 다 그렇다고 냉소하고 싶게 만드는 세상이지만, 적어도 학교는 그런 냉소보다 더 따뜻해야 하지 않을까.